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

2020.09.16 16:53:10

서희정

충북보건환경연구원 보건연구사·코로나19 진단검사 담당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 왠지 낯설지 않은 이 문구는 2011년에 개봉했던 '컨테이전'이라는 영화 속 대사이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감염병 예방법이기에 영화속에서 자주 언급됐을 것이다. 신종 감염병으로 사회가 마비된 영화 속 상황이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무너진 지금의 상황과 자꾸만 겹쳐진다.

2020년 1월 25일 아직 설 연휴가 끝나지 않아 시댁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A보건소 감염병 담당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이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떠밀리듯 살아진 것 같다.

나의 일터는 보건환경연구원이고, 나는 코로나19 진단검사업무를 맡고 있다. 상황은 급박하게 진행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진단검사팀이 꾸려지고 보건연구부 부장님과 과장님을 중심으로 매일 24시간 비상근무가 시작됐다. 26명의 보건연구부 직원들 모두 각자의 업무를 마치고 나서, 코로나 업무를 위해 두 번째 출근을 한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나서야 집으로 복귀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청명한 가을하늘이다.

주말도 없는 비상근무, 밤낮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코로나19 종식 보다 서로의 건강을 더 걱정하게 됐다. 휴가를 낼 수 없어 몸이 아파도 링거를 맞으며 버티면서도 후배 연구사의 건강을 먼저 걱정해주시는 부장님, 연구사의 일임에도 개의치 않고 앞장서서 도와주시는 과장님,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기꺼이 늦은 밤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동료 엄마 연구사들, 힘들지만 서로 웃어주고 걱정해 주는 동료 연구사들의 모습은 또 하나의 일상이 됐다.

그리고 7살 아이의 엄마인 나는 매일 딸의 전화를 받는다. 어린이집, 학원이 휴원하고 갈 곳 없어진 아이는 심심함을 견디며 할머니의 핸드폰으로 몰래 전화를 건다. 첫 마디는 늘 "엄마, 오늘은 일찍 와? 늦게 와?"이다. "오늘은 일찍 갈게."라고 대답할 수 없는 날이 훨씬 많기에 전화벨이 울리면 미안한 마음에 선뜻 받지 못하고 뜸을 들이게 된다. 아이는 늦도록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내가 퇴근할 때면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한다. 이럴 때면 영화처럼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체력은 바닥이 나고 정신적 피로감은 극에 달했지만 우리 연구원 진단검사팀 모두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의 이 업무가 지금 상황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기꺼이 자가격리된 듯 실험실에 박혀 지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누구도 만나지 말아라!"같은 영화 속 대사가 우리의 일상에 퍼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딸아이의 소중한 7살을 조금이라도 더 함께 보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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