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커피는 탄생부터 종교와 인연이 닿아 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커피나무였다는 견해가 있고, 유대 솔로몬왕이 에티오피아 초대 황제를 아들로 둘 수 있던 데는 시바의 여왕이 가져간 커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동굴수행에서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된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구해 낸 것이 가브리엘 천사의 커피였다는 기원설도 있다.
신앙을 가진 커피애호가들은 종종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두 손을 모은다. 커피의 영혼을 믿는 맹목적 샤머니즘의 기운에 취해서가 아니다. 떼 밀리듯 숨가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커피는 우리를 멈추게 하고,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과 묵상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코로나19의 위협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불안과 고통의 한 복판에서 촛불을 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다. 고난과 역경이 낳는 무서운 부작용은 이웃을 제쳐야 할 경쟁자, 나아가 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기도문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로 알려진 '평화의 기도(Prayer for peace'가 자주 들려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좋은 기도문이다'고 생각만 하고 그냥 흘려보내기 쉬었던 기도문 중 일부가 요즘 가슴 깊이 파고 든다.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
프란치스코 성인은 '제2의 예수'라 불렸을 만큼 희생적인 삶을 실천한 분이었기에 800년이 지나도록 기도문의 정신은 더욱 생생히 살아있다. 특히 신앙이 있는 커피애호가들은 카푸치노(Cappuccino)를 대할 때마다 평화의 기도를 떠올릴 수 있으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에스프레소에 거품을 낸 결이 고운 우유를 섞는 카푸치노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을 따르기 위해 결성된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수도복인 '카푸트(Caput)'에서 유래됐다.
교부학자인 미국베일러대학교의 마이클 폴리(Michael P. Foley) 교수는 "카푸치노가 시작된 곳이 이탈리아가 아니라 오스만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가 충돌한 1683년 비엔나전투 직후의 오스트리아 다"고 주장한다. 전쟁통에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마르코 다비아노 수사가 공을 세웠다. 오스만투르크 대군이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던 비엔나를 함락시키려 총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 다미아노 수사는 기독교측 연합군의 사기를 고무하는 설교를 멈추지 않았다. 수십 차례 목숨을 건 그의 용기 덕분에 열 배 이상의 무력을 갖춘 이슬람이 결국 물러났다. 이 때 이슬람 병사들이 먹기 위해 가져갔던 커피가 유럽에 전해졌다. 당시 오스만의 커피는 병사들의 잠을 쫓기 위해 최대한 카페인을 많이 추출하는 방법으로 로스팅되고 추출됐다. 그 때문에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인들이 각성효과와 에너지 증진 효과를 누리기 위해선 쓴맛을 참아내며 커피를 삼켜야 했다. 이를 보다 못한 다미아노 수사가 커피에 우유를 섞는 방법으로 쓴맛을 해결해주었다. 이것이 카푸치노의 기원이다. 다미아노 수사가 입은 카푸트의 색깔이 커피에 우유를 섞으면 나타나는 갈색과 비슷했고, 나중에 거품을 낸 우유가 잔 위로 볼록 올라온 모양이 카푸친 수사들이 쓴 후드형 모자 같다는 이유도 붙었다.
카푸친 수사들이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할 때면 숨쉬듯 되뇌인 게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문이다.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겠다"고 기도를 올리고픈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