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2020.11.26 09:37:15

류정현

충주시 기획예산과 주무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운명이 뒤바뀐 단어가 있다면 '밀폐'와 '밀집'일 것이다. 정부는 여기에 '밀접'까지 더해 '3밀 시설'로 규정하고 방문 자제를 권하고 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찬 모습이나, 실내 공연장에 사람들이 빼곡히 서서 떼창하고 뛰는 풍경은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이미지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어느 공포영화의 섬뜩한 장면이 됐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새로운 전염병이 돌면 또 마스크를 꺼내 쓰고 악수 대신 주먹을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가.

백신만 개발되면 이 상황이 다 끝날 것이라고 내심 바라지만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교수에 의하면 백신은 최선책이 아니다.

'코로나 사피엔스(인플루엔셜)'에서 그는 질병이 백신보다 항상 먼저 발생하게 되고,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의 긴 시간 동안 많은 생명을 잃는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화학백신'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행동백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행동백신' 또는 '생활방역', 뭐라고 부르든 간에 앞으로는 '3밀 시설'을 멀리해야 한다니 개인적으로 서글픈 기분이 든다.

'3밀 시설'을 관통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시설'이고, 시설의 다른 말인 건물은 먼 옛날부터 비바람을 막기 위한 벽과 지붕이 핵심인데, 건물의 밀폐성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다시 동굴이나 움막에서 살아야 할지 적잖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밀집'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높은 인구밀도를 꼽는다.

통계청의 '지역별 인구 및 인구밀도' 자료에는 2018년 기준 전국 평균 인구밀도가 1㎢당 514명인데 반해 서울은 무려 1만6천34명으로 30배가 넘는다.

또한 2019년 12월말 기준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인구 5천184만 명 중 2천592만 명이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면서 수도권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국내 인구의 50.0001%를 차지했다. 올해 5월말 기준으로는 0.15% 더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1일 대통령 주재 제6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된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내용을 보면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수도권으로 사업장을 옮겨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수도권 규제가 풀리는 인상이 짙은데, 코로나19 대응으로 나온 정부 정책이란 것이 지금도 매일 확진자가 수십 명씩 나오는 수도권에 더 많은 기업이 들어서도록 유인하고, 결국에는 더 많은 사람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아이러니를 야기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한 경제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주식투자에 있어 위험을 최소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한곳이 아닌 여러 종목에 분산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지금은 수도권이라는 바구니에 눌러 담았던 계란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정말로 계란을 나눠 담아야 할 때가 왔다. 코로나19가 매일 뉴스를 통해 우리에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인구 과밀의 폐해를.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등 현재 답보 상태인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더 늦기 전에 속도를 높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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