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꽃밭

2020.06.30 17:58:52

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아침 산책길 이정골 삼거리에는 할머니의 꽃밭이 있다.

아파트 건설에 50년 살던 집을 내주고 고향서 그리 멀지않은 삼거리 한편에 작은 외딴집을 마련한 할머니는 길가 양옆을 일구어 화단을 만들었다.

팔순의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폐지를 수거하여 고물상에 갖다주고 6~7천원을 받으면 그중에서 꽁을 쪼개듯 떼어 놓았다가 할머니가 좋아하는 꽃씨를 사다 주셨다.

할머니의 꽃밭에는 달맞이꽃, 자주달개비꽃, 붓꽃, 초롱꽃, 수염패랭이꽃, 천인국, 당아욱, 개양귀비, 샤스타데이지, 붉은인동, 장미 등 할머니의 꽃들이 만발했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선 아이처럼 아내의 눈과 입과 카메라 렌즈가 한꺼번에 벌어진다. 허리 굽혀 조심조심 풀을 뽑는 할머니의 구릿빛 얼굴에서는 세월의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줄기가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커피를 타시는 할머니의 손등이 바게트빵을 닮았다. 지나는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보시하는 내외분의 노력과 정성이 꽃보다 아름답다.

용정산림공원 옆 고갯마루를 막 넘으면, 가게가 잘되기를 바라는 주인의 재치가 돋보이는 '오래가게' 간판의 시골 슈퍼가 나온다. 그 앞에서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멋들어진 가게이건만 손님이 그리 많지않아 주말에만 문을 연다.

지나는 길에서도 보이는 언덕의 예쁜 개집 옆에는 멋진 파라솔이 쳐져있어, 동물을 사랑하는 주인의 배려가 각별하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패랭이꽃과 붓꽃의 안내를 받아 안마당에 들어서면 비밀의 정원이 나타난다. 작약, 창포, 노랑무늬붓꽃, 제주부추, 개양귀비, 자주달개비, 군자란, 붉은아카시아 등 무더기로 흐드러진 꽃들에 혹하고 만다.

맘씨 좋은 주인장이 텃밭에서 부추를 서너 움큼 뜯어 싸주신다. 고개 너머에서는 동네 할머니가 손두부, 비지, 청국장을 팔고 계신다.

한참을 내려가다 되돌아가 9천 원을 주고 비지와 청국장을 샀다. 집에 돌아와 점심에는 비지장을, 저녁에는 청국장을 끓여 먹으니 그야말로 고향의 맛 어머니맛이다.

참기름, 식초, 설탕, 진간장,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린 부추겉절이는,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한 탓에다 정맛까지 더해져 피도 맑아지고 정신도 밝아지는 진미를 선사했다.

큰길가에서 뻥튀기 기계를 놓고 튀밥을 튀겨 파는 노부부가 계신다. 일부러 찾아가 주전부리감을 조금 샀더니 덤까지 주신다. 만원의 행복이다.

아래층에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이사떡을 가지고 왔다.

갑자기 어느 초등학생의 답안지가 생각나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 했다. '뭘 이런걸 다'

실로 오랜만에 그것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서로가 멀리하고 어려운 이 때에 느껴보는 아기자기한 감동이다.

숲속 산책길에서 때죽나무 꽃을 보았다. 김삿갓을 닮은 꽃이다.

뭇 꽃들은 주광성(走光性)으로 인해 하늘을 향해 피건만 이 꽃은 오롯이 땅을 보며 피어난다.

'땅이 아니었으면 제가 어찌 피어날 수가 있었겠어요. 감사합니다!' 하듯이. 가지마다 복(福)이 주렁주렁 열렸다.

씨앗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그리운 이에게 걸어주고 싶다.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사람사전>에 '가마'에 관한 글이 있다.

'산 사람은 가마. 죽은 사람은 상여. 휘청휘청 타는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은 가마 몇번 타다 상여 타는 것. 꽃가마 으스대 봤자 꽃상여 타는 것.'

개심만복래(開心萬福來)일 터다. 마음을 열고 어울리고 나누고 고마워하면 온갖 복이 들어올 것이다.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좋은 생각하고 소소하게라도 좋은 일 하면 매일매일이 기쁘고 뿌듯하지 않을까·

할머니의 꽃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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