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다시 살려면

2020.04.20 17:48:18

[충북일보] 4·15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참패한 야당은 수습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방법론과 인물을 둘러싸고 내부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자칫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다.

*** 일하는 국회 만들어 보여줘라

4월은 종종 '잔인한 달'로 표현된다.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가 떠오른다. 거기에 나오는 '잔인한 달'이란 표현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엘리엇의 '잔인한 달'은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그런 4월이다. 엘리엇은 433행의 긴 시를 완성했다. 거기서 죽음의 겨울과 재생의 아픔을 견뎌내는 시적 환희를 추구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다.

4월에 필패한 미래통합당이 오버랩 된다. 통합당은 거짓과 불의를 벗어던져야 한다. 정의(正義)의 가치를 다시 정의(定義)해야 한다. 물론 정신적 황폐부터 극복하는 게 순서다. 통합당에 올해 4월은 그 어느 해보다 잔인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미증유의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온 국민이 치료약 없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통합당은 국민을 살리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통합당은 아직 과거의 한국식 '자유민주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을 착각하고 있다. '보수'와 '자유'의 개념부터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보수를 제대로 정립할 수 있다. 산업화 시대의 업적을 인정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 시대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논리를 벗어나라는 얘기다. 진짜 자유주의로 가라는 주문이다.

다음 대선이 2022년 3월 9일이다. 내년 초부턴 어쩔 수 없이 대선 국면이다. 일각에선 보수가 몰락했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틀렸다. 중도가 선택한 일이다. 보수 대신 진보 손을 들어줬을 뿐이다. 중도가 좌파가 된 게 아니다. 통합당은 4·15총선에서 중도층으로부터 외면 받았다. 샤이 보수 성향을 보이던 유권자들마저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현 정권의 코로나 대응 자화자찬에 열광해서가 아니다. 통합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이 워낙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보수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통합당은 지금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려야 한다. 그런 다음 겸손의 보수를 배워야 한다. 보수가 추구하는 자유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통합당은 보수를 자임했음에도 실패했다. 겸손을 갖추지 않아 맞이한 업보다. 이제라도 자신과 이웃, 동료, 경쟁자, 국민에 대한 겸손을 갖춰야 한다. 세상의 일에 대한 겸손도 마찬가지다. 겸손의 보수로 품격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그때 비로소 국민의 신뢰와 사랑으로 회생할 수 있다.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할 수 있다. 그게 진짜 보수의 모습이다.

통합당은 바닥에 떨어진 민심부터 잡아야 한다. 할 일은 간단하다. 국민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기대는 그리 높지 않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국민이 뽑아 놓은 자리다. 일을 하는 건 당연한 모습이다. 통합당의 미래는 이 당연한 모습의 여부에 달렸다.

*** 잔인한 4월 껍데기를 날려라

통합당에 어울리는 옛말 하나를 써본다. 반근착절(盤根錯節), 꾸불꾸불한 뿌리와 헝클어진 마디다. 일상에서 의미는 좀 더 확장된다. 부딪혀 보지 않고서는 날카로운 칼도 진가를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쓰인다. 정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통합당의 사정이 비상상황이다. 실로 반근착절,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문제를 풀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과제일지라도 답은 있다. 실용적 자세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가면 된다. 살피고 살펴 찾는 게 고도의 기술이다.

통합당은 실패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오만과 과욕은 지금까지로 충분하다. 기울어진 운동장 탓도 할 필요가 없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로 가면 된다. 그래야 야수성과 능력을 겸비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엘리엇과 신동엽이 소망한 4월은 결코 좌절이 아니다. 희망이다. 통합당은 알곡만 남기고 껍데기를 버려야 한다. 그게 잔인한 4월이 전하는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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