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New Wine)'과 총선 물갈이

2020.03.31 14:43:47

[충북일보] 성경사전을 보면 새 술은 New Wine, 즉 완전히 발효되지 않아 아직 당분이 많이 남아 있는 '향이 좋고 달콤한 포도주'를 의미한다. 새 술은 발효성이 매우 강해 새 부대에 넣어 보관하는 습관이 있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낡은 전통에서 벗어나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새로운 삶을 의미할 때도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총선판 물갈이론

대통령과 국회의원,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농협조합장 등. 우리는 숱한 선거를 치른다. 그럴 때마다 '물갈이론'은 단골 구호다.

'물갈이론'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로 귀결될 수 있다.

오는 4·15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국회의원만 거의 100명에 육박한다. 총 300명을 뽑는 국회의원 중 30% 이상이 물갈이된 셈이다.

물갈이는 유권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3선 이상의 다선 물갈이를 통해 신선한 인물을 공천할 경우 해당 정당의 지지도는 올라간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유권자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물갈이가 좋은 것인지는 한번쯤 따져봐야 한다. 해방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회에서 초선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대부분 중앙당에서 궂은 일을 하는 전위대에 그쳤다. 여야 간 극심한 충돌을 빚을 때면 으레 앞장섰다. 초선 국회의원이 당론과 다르게 발언했다고 몰매를 맞는 장면을 숱하게 봤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옳은 말로 전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민주당의 금태섭 의원. 그는 이번에 공천을 받지 못했다. 금 의원과 함께 당론과 다른 말을 했던 같은 당의 조응천 의원도 비록 공천은 받았지만, 앞으로도 아슬아슬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문제는 지금 정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수정권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선수가 쌓여갈 수록 능수능란한 처세를 자랑한다. 초선보다는 재선, 재선보다는 3선·4선의 정치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5선과 6선, 7선까지 올라가면 국회 주요 보직은 물론, 중앙 정치권에서 거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물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4년을 학습한 재선과 8년을 학습한 3선, 그리고 12~16년의 학습과정을 거친 다선 중진의 정치적 중량감은 초선과 비교되기 힘들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내륙도인 충북의 국회의원 8명의 선수가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를 수시로 고민해 보았다. 정답은 다양성이다.

다선 위주의 스쿼드 또는 초선 위주의 스쿼드는 지역발전에 큰 희망을 갖기 힘들다. 물론, 초선 중에는 3선 못지않은 정치적 역량을 가진 사람이 있다. 반대로 다선이라도 초선만도 못한 국회의원도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더 우리 지역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할 것인지를 따지는 일이다. 다선이기 때문에 물갈이를 해야 하고, 초선이기 때문에 국회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초선보다 더 중요한 다선

얼마 전 고심 끝에 불출마를 선언한 오제세 의원과 저녁식사를 했다. 오 의원은 중진 의원들에 대한 중앙당의 가혹한 잣대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오 의원의 주장에 동의했다. 충북에서도 영·호남과 마찬가지로 5선과 6~7선까지 배출돼야 한다는 말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오 의원의 주장은 간단명료했다. 4~16년 간 학습된 국회의원을 무조건 물갈이를 하는 것은 신문사의 경우 매번 수습기자만 뽑아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는 것이다.

국장급과 부·차장급, 평기자가 조화를 이루는 조직이어야 돌아갈 수 있는 신문사가 오로지 수습기자만 갖고 운영될 수 있느냐는 반문을 듣고는 한동안 멍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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