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방울미

2020.03.25 16:18:49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음성군 대소면 내산리에 '방울미'라는 마을이 있는데 한자로 '영산(鈴山)'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산의 모양이 방울처럼 생긴 방울산이 있어서 이 방울산 아래 있는 마을을 방울미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괴산군 문광면 유평리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방축리에도 '방울미'라는 마을이 있는데 역시 유래는 방울과 연관이 있었다.

방울은 소리를 내는 물건이기에 산에서 방울 소리가 나지 않고서는 산의 모양을 방울 모양으로 본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분명히 처음에는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이었는데 음운이 변이되면서 비슷한 소리를 가진 방울을 연상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여러 지역의 '방울' 지명을 찾아보았다.

정지용의 향수 못지않은 짙은 향수로 고향의 산하를 노래한 시인이 있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장리를 고향으로 둔 문인수 시인인데 이 시인의 시에 고향의 '방올음산'이 많이 나온다. 해발 782m의 방올음산은 북쪽으로는 금오산, 남쪽으로는 선석산과 이어져 있으며 산 정상 주변에 바위가 많다 하여 방암산, 바우암산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고 한다.

방올음산에는 옛날에 이른 새벽이거나 늦은 저녁이면 은은한 종소리가 온 고을에 울려 퍼졌는데그 종소리가 널리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하고 지친 몸을 한없이 추스르게 한다고 해서 '방울 音 나는 山' 이라는 의미를 '方兀音山'이라 이두식으로 표기했다고 전해온다. 이 고장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이 이두식 표기를 좇아 방올음산 바우람산 바아람산 등으로 편하게 부르고 있다. 종을 왜 방울(방올)로 크기를 줄여 표기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어원이 '방울'에서 비롯되었다면 방울의 모양이나 의미까지 연관지어야 할 것이나 '방울'의 소리를 가지고 '방울'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나타낸 것이기에 소리가 나는 것이면 뭐든지 해당되는 것이므로 종이나 방울의 구분이 필요지 않았으리라. 방올음산은 삼각형의 거대한 푸른 종 하나가 하늘에 걸린 듯한 그런 뚜렷한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오늘날 이 산의 이름을 현령산(懸鈴山), 혹은 영암산(鈴岩山)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황해북도 연탄군 연탄읍의 방오리는 본래 황주군 구락면의 지역으로서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방오리(方午里)라 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역시 '방울, 방올'과 같은 어원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의 방우리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시장리의 방오골, 평안북도 태천군 태천읍의 방울골 등도 '방울'이라는 소리를 가지고 있으나 역시 '방울'과의 연관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지명에 쓰인 '방울'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에서 비롯된 것일까?

오늘날처럼 직업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도시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농업이 주업이었기에 벼농사를 짓는 농토를 가리키는 '배미'라는 말이 정말로 흔하게 쓰이던 말이었다. 따라서 '배미'의 모양과 위치를 가지고 부르던 말이 그대로 지명이 된 곳이 많다.

수리 시설이 발달하여 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배미'가 많이 늘어난 시기에는 '배미'를 구분하여 부르기 위하여 '높은 배미, 낮은 배미, 큰배미, 작은 배미, 윗배미, 아랫배미' 등과 같이 '배미'의 앞에 '배미'의 모양이나 위치를 가리키는 수식어가 붙게 되지만 수리 시설이 발달하지 못하여 '배미'가 드물던 시절에는 '배미'가 그대로 지명이 되어 '배미골(배미가 있는 마을이나 골짜기)'과 같은 지명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명에서 '배미'는 '뱅이, 방이'로 변이되어 쓰이는 예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방울미'는 '배미골'의 변이 과정에서 볼 때 '배미골미(배미골에 있는 산)→배미울미산→뱅이울미→방울미'으로 추정할 수가 있지 않을까· 또한 주민들이 '방울미'를 '방올미'라고도 부르는 것은 '방울'의 옛말이 '방올'이기도 하지만 본래 '방올'이었는데 '방울'의 이미지를 내세우다 보니 '방울'로 변이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배미골→뱀골→밤골→방골→방올'의 변이 과정도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방울미'가 '배미골이라는 골짜기에 있는 산'이라는 말로서 그 산 아래 생겨난 마을을 가리키는 의미로 본다면 이제 '방울미'에서 방울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겠지만 아름답고 영롱한 이름은 영원히 이어가기를 바란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