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긴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생기는 걱정이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털갈이를 보면서 탈모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커피를 많이 마시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까지 나돌면서 커피혐오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주장을 제법 그럴듯하게 뒷받침하는 게 '탈수작용'이다. 아메리카노를 5~6잔 마시면 카페인의 이뇨작용으로 몸에서 2.6% 가량의 수분이 배출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수분이 1% 정도 빠져 나가면 갈증을 느끼고, 5~6%가 빠져나가면 체온조절이 어렵다. 수분이 11% 이상 빠져 나가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이 된다. 신체에서 수분이 2.6% 빠지면 두피뿐만이 아니라 피부가 건조해지는데, 모발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변형체인 DHT(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가 증가되고, DHT가 모낭을 공격해 탈모를 부추긴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카페인 하루 섭취량을 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카페인이 혈관을 좁게 만들어 효소와 호르몬의 이동을 방해하고 독소가 쌓임으로써 탈모를 악화시킨다는 말도 돌지만, 이에 대해선 우려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거세다.
커피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과도하게 분비된 인슐린이 혈당의 일정 부분을 지방으로 만들어 혈관에 부담을 줌으로써 머리카락을 쉽게 빠지게 만든다는 견해도 있다. 또 커피가 혈액부족을 유발시켜 모발생성을 억제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들이다.
이와 같은 '탈모위협론'의 홍수 속에서 "커피가 탈모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커피잔을 멀리하게 하는 법이다.
탈모를 둘러싼 커피의 유불리(有不利)는 결국 '음용의 적절성'에 달렸다. 카페인의 하루 권장섭취량을 넘지 않도록 커피를 적당량 마시면 머리카락이 빠질 걱정은 안 해도 좋다. 그렇다면 관심은 커피를 적절량 마시면 탈모방지에 유익한 지에 쏠릴 만하다.
탈모는 대부분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과다 분비로 유발된다. 테스토스테론이 지나치게 많으면 모근이 약해지고 모낭의 대사활동이 원활하지 않게 돼 탈모가 생긴다. 항간의 소문과 달리 커피가 되레 탈모 방지에 유익하다는 주장이 있는 것은 카페인 덕분이다. 카페인이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억제하면서 모근이 약해지는 것을 막는다.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독일쿠트르볼프연구소의 아돌프 클렌크 박사는 "카페인이 모근을 튼튼하게 하고 모낭으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잘 만들도록 돕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탈모 환자에게서 모근을 채취해 배양한 결과, 카페인 함유 용액에 배양한 모근에서 머리카락이 46% 빨리 자랐고, 수명도 37% 길었다. 카페인과 테스토스테론을 혼합한 용액에서는 카페인이 테스토스테론의 활동을 막으면서 모발의 성장을 도왔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 성분이 모근에만 집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퍼지기 때문에 하루에 40~50잔을 마셔야 클렌크 박사의 실험에서 드러난 탈모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커피를 마시기보다는 카페인 함유 샴푸를 꾸준히 사용하는 방법 등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다고 커피를 머리에 바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커피에 들어 있는 다른 성분들이 두피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검은콩, 검은깨와 같은 블랙푸드(Black food)가 모발 건강에 좋으니 검은빛을 띤 커피도 탈모예방에 좋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Nonsense)다. 달달한 '봉지커피'를 많이 마시면 설탕의 단맛이 피부를 느슨하고, 두피 역시 늘어지게 만들어 머리카락을 빠지게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커피 한 두잔으로 탈모를 해결하려 한다거나 거꾸로 두려워한다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효능을 찾으려는 것은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카페인 섭취량을 벗어나지 않는 커피 음용이 유익하다는 사실은 2천여년간 인류가 커피를 즐겨 마셔왔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