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디지털 시대의 충북일보

달라진 지역 신문
'잊힐 권리'에서 '잊히지 않기'까지

2020.02.20 20:32:44

[충북일보 김희란기자] "충북일보 미디어팀이죠, 제가 나온 기사를 삭제하고 싶은데요."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던 전화가 잦아졌다. 분기별로 한 두 번씩은 연락이 온다.

삭제 요청의 이유는 다양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것이 싫다'라거나 '이름을 검색하면 기사가 나온다'라는 것이 요지다. 간혹 미담 사례로 소개된 일이나 인터뷰 기사일 경우도 '이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삭제를 요구할 때가 있다.

해당 기사를 살펴보면 다소 오래된 보도자료인 경우가 많다. 충북일보가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보다는 여러 지역 언론에서 다뤘던 기사에 대한 삭제 요청이 대다수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뿌려진 사진과 내용이 온라인상에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기록할만한 사건이거나 기획 의도에 반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편집국의 승인을 거쳐 삭제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의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잊힐 권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3년 대법원은 인격권을 침해하는 기사에 대한 원고의 기사삭제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역 신문은 물론 통신사와 방송사, 언론중재위원회에 기사삭제나 검색차단을 요청하는 건수도 늘고 있다.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잊힐 권리라는 용어가 명문화된 것은 EU 사법재판소의 판결에서다.

2010년 스페인 변호사 코스테하 곤잘레스가 기사삭제 등과 관련해 지역일간지와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회보장채무의 회수를 위한 압류절차 관련 부동산 경매공고에 자신의 이름이 기재된 것을 보고 개인정보 제거나 검색차단을 요청한 것이다.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이 링크 삭제를 명령했지만 구글이 불복하면서 EU사법재판소로 넘어간 이 사건은 2014년 '잊힐 권리'를 강조하며 곤잘레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삭제권이나 정보 접근 차단권의 행사요건이 구체화 됐고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방침이 부각됐다.

우리나라에는 잊힐 권리라는 문구를 사용한 법규는 없지만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을 들어 개인정보보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한국에서 잊힐 권리를 규범화한 최초의 조례는 강원도의 '잊혀질 권리 확보 사업 지원조례'다.

제2조에서 '잊혀질 권리란 인터넷(디지털)에서 각종 정보(콘텐츠)를 공개한 사용자가 더 이상 공개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검색되거나 서비스(저장 유통)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라고 규정했다. (해당 조례는 성과 없음을 이유로 지난해 2월 폐지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6년 4월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고하기도 했다.

본인이 원한다고 모든 것을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기사, 독자들의 알 권리가 우선시 되는 기사는 본인이 원한다고 해도 내려갈 수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해 10월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얼굴, 성명 등 개인정보 노출 기사삭제에 대한 찬반 비율을 발표했다. 찬성이 93.7%를 차지한 반면, 반대는 6.3%에 그쳤다. 응답자 10명 중 9명은 기사에 대해 본인이 부담감을 느낀다면 삭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거 범행 사실 보도에 대한 응답은 달랐다. 응답자의 71.7%가 삭제를 반대했다. 개인정보와 범행 사실에 대한 기록을 구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디지털 시대 지역 신문

종이 신문 위주였던 과거의 경우 기사삭제 요청은 불가능했다. 다음 지면에 정정 보도를 요청하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의견을 전달했다.

'사실과 다름'이 아닌 '개인의 불편'이 기사를 정정하거나 번복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온라인에 게재된 기사를 누구나 쉽게 공유하거나 재가공 유포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이 부담을 느끼는 범위가 넓어졌다. 기사삭제 요구가 증가한 것은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타고 초상권과 명예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17주년을 맞은 충북일보가 창간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신문사 홈페이지는 지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발행된 지면의 내용을 PC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문사 홈페이지의 존재 이유였다. 지면에 나왔던 기사를 다시 보고 싶다거나 놓친 기사를 찾기 위해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흐름은 빠르게 변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종이신문보다 먼저 언론사 홈페이지를 찾는 온라인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세계적으로 '신문의 위기'가 논의됐다. 프랑스 유명 일간지들이 사라진 독자들로 인한 판매 부수 급감으로 위기를 겪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 신문사들이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인해 줄어든 유료 신문 독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충북일보도 다르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지면을 받아들기 전 홈페이지를 방문해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늘었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정점을 찍던 방문자 수는 홈페이지 기사를 마감하는 전날 오후 9시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스마트기기의 등장과 보급은 혁명이라고 할 만한 생활의 변화들을 가져왔다. 2011년 2천만을 돌파한 스마트폰 인구는 2018년에는 5천만 시대를 열었다.

충북일보는 스마트폰 천만 시대에 발맞춰 모바일 사이트를 열었다. 사이트 오픈 당시 PC 접속자 수 대비 10%에 그쳤던 모바일 접속자 비율은 이미 PC 접속자 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언제 어디서나 기사를 보고, 기사 내용을 발췌하거나 링크를 복사해 다양한 경로로 퍼져나간다. 지역 신문의 기사들도 더는 해당 지역에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 지역 신문의 '잊히지 않기'

디지털 시대는 기사의 가치를 변화시켰다. 포털이 잠식한 온라인 시장은 검색어로 속도경쟁을 벌이고 이름만 다른 언론사에서 똑같은 뉴스가 쏟아진다. 언론에 대한 신뢰를 인정하지 않는 독자들이 늘었다.

일반인들도 뉴스를 생산한다. 사건 사고 현장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은 물론 먼저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적 반향을 몰고 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디지털 시대의 한 가운데서 지역 신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역 신문들도 앞다퉈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꾀했다. 신문이지만 방송을 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카드 뉴스를 만든다거나 SNS에 기사 링크를 퍼 나르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충북일보는 원치 않는 정보로 '잊히기'를 주장하는 독자들보다는 '알려지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이름난 기업가, 정치인들이 주를 이루던 지면에서 벗어나 우리 지역 주민들의 작은 목소리에 집중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다양한 시도는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나가려는 지역 신문의 안간힘이다. 지역 독자들로부터 '잊히지 않기' 위해 지역 독자들을 선택했다. 온라인 독자들을 겨냥한 '마이리틀샵' 연재물은 골목 상권 속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보도 사진의 틀을 벗어난 특색 있는 사진과 SNS용 재가공으로 호응을 얻었다.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각자 홍보를 이어가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발굴해 기사를 꾸미는 '샵스타그램'도 꾸준히 온라인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SNS서포터즈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들이 취재한 내용을 기사체로 재가공해 새로운 시각으로 지역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큰 소리로 담을 수 있는 것은 지역 신문이다. 가까이에서 독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환경을 개선하거나 제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인 동시에 소소한 일까지 자랑할 수 있는 친밀한 이웃이다.

디지털 시대 지역 신문이 갖게 된 장점 중 하나는 제한 없는 파급력이다. 이는 '잊힐 권리'를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알려지기에도 더없이 좋은 조건으로 돌아왔다.

'잊히지 않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여전히 많다. 그 모든 지역민의 요구를 담기 전까지 충북일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디지털 시대는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다. 그 흐름을 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17주년 충북일보의 또 다른 과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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