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의 추억

2020.01.22 16:23:14

이정희

수필가

설날 아침에는 떡국을 먹는다. 차례가 끝나고 나면 아침식사를 하게 되는데 가지런히 썰어 낸 떡과 예쁘게 빚은 만두 위로 석이버섯과 실고추가 볼수록 정갈하다. 계란 지단에 김까지 어우러진 고명의 맵시도 먹기가 조심스럽다. 그 외에 강정과 전야 과일 등 푸짐했으나 떡국이 유독 돋보인다. 단지 한 그릇이지만 며칠 전부터 장만한 것을 생각하면 느낌이 많다.

설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쌀을 씻어서 가래떡을 뽑으셨다. 방앗간에서 가져오면 쟁반에 하나씩 펼쳐서 굳힌다. 아주 춥지 않은 경우 하룻밤 지나면 썰기 좋게 굳는다. 늦도록 썰고 난 후에는 함지 가득 포기 배추를 다진다.

준비할 동안에 식혜와 수정과를 달이고 쌀가루로 조청을 만든다. 석이버섯도 뜯어놓은 뒤 마른 고추를 살짝 불려 실고추를 저민다. 김을 구워 떡국 고명을 만들었다. 한편에서는 저고리와 마고자 등을 꿰매고 다림질을 하면서 손을 보기도 했다.

까치설이 되면 만두피에 쓸 반죽을 준비한다. 밀가루 서너 태는 뭉쳐야 만두소와 맞아떨어진다. 그 다음 다진 김치를 애벌 짜서 올려 두면 김치물이 얼추 빠진다. 함지에 쏟아 두부와 고추 다진 것과 양파 당면을 섞고 참기름과 깨소금에 무친다.

금방 시작하기에는 벌려놓은 게 너무 많다. 저녁에 만들 요량으로 일단 광에 들인 후 녹두부침과 전야를 부치기 시작한다. 녹두부침은 녹두를 갈아서 쌀가루와 섞은 것이고 전야는 버섯과 양파 등을 다져 뭉친 뒤 둥글게 만들어서 부쳤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본격적인 만두 작업에 들어간다. 어머니가 반죽을 밀어대면 언니 동생 모두가 한 팀이 되어 만두소를 넣고 아물린다. 지지부진하던 것이 탄력이 붙으면서 속도가 빨라진다. 도와준답시고 한 자리 낀 오빠의 만두가 허룩하다. 그 다음 후렴으로 나온, 만두는 속맛이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미어지게 채운 것들은 영락없이 깨진다.

밤이 깊어지면 수북했던 만두 속도 바닥이 난다. 크고 작은 바구니마다 빼곡하게 재우고 대충 치우다 보면 금방 아침이다. 어머니는 일찍부터 가마솥에 장국을 안치고 가래떡을 꺼내서 찬물에 헹군 뒤 준비해 둔 음식을 꺼내왔다. 빈대떡과 나박김치 식혜와 수정과를 담고 밤 대추도 얌전히 담아냈다. 배 사과도 층층으로 깎아 내면 제상은 금방 그들먹해졌다.

가마솥에 떡을 넣고 끓어나면 만두를 넣는다. 떡국을 푸고 만두 몇 개를 담은 뒤 예쁘장한 고명을 얹어 상에 올린다. 보노라면 저만치 공이 들어갔으니 나이와 맞바꿔 먹을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례가 끝나고 떡국을 먹은 뒤에는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눈다. 이어서 윷놀이와 함께 혹은 제기를 차고 부녀자는 널뛰기를 했다. 살림에 바쁜 부녀자들이 집 밖을 볼 수 있게 창안한 놀이다. 널뛰기를 담장 옆에서 한 것도 그 점을 고려한 성 싶다. 제기차기 또한 하루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놀이였는데 그마저도 줄어드는 추세다.

우리 집 같은 경우 가래떡을 뽑고 만두와 식혜와 수정과를 장만하지만 사서 지내는 집도 꽤 많다고 한다. 바쁘다 보면 그럴 수 있겠으나 우리 또한 약과와 강정과 다식 등은 사서 쓰곤 했으니 다를 건 없다. 옛날처럼 제사 음식 일습을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에는 많이 간소화된 편이다.

요즈음 박물관이나 호텔 등에서 설맞이 전통 민속놀이 행사를 펼친다고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한마당 체험'이라는 구실로 떡국, 빈대떡, 식혜, 수정과 같은 설음식을 먹으며 재기차기, 투호, 윷놀이, 장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와 전시 체험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의식주가 넉넉하지 못했던 그 옛날 1년에 한 번 곱게 차려 입고 배불리 먹으며 즐기는 것도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만큼 경건히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고, 명절이 아니면 또 바쁜 세상에 일가친척이 만날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나이 한 살 먹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만 그걸 생각하면 참 유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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