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농사

2020.01.21 17:41:27

신현애

공인중개사

노총각인 그는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자동차 영업사원을 하였다.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힘든 시대, 청년들이 TWO job을 하는 거는 종종 보아 왔던 터. 그런데 그가 대청호 주변에 사놓은 땅에 대출을 받아 또 다른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이야기 했을 때, 우리는 참한 아가씨를 만나 장가를 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자본이 넉넉지 않고 연고지도 아니고, 농사 경험이라고는 고향인 청양에서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본 것이 전부라는 그에게 달리 도움 줄 말이 없었다. 며칠 뒤에 사무실에 온 그는 비닐하우스를 설치했고 지하수를 끌어 올려 살수작업도 하고 원목에 종균접종도 마쳤다고 했다.

완연한 봄볕이 창가에 와 앉아 있던 날, 출근하여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라는 말을 하며 색안경을 낀 그녀의 눈매를 보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볼도 부어 있었고 대단히 화가 나 있음이 분명했다. '무슨 일일까?, 어쩌면 나와 관계된 일이 있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엊그제, 매도 계약서를 작성 한 것에 '문제가 있나?, 생각을 하며 속으로는 계약서의 내용을 더듬어 내려갔다. 매매 금액, 물건의 소재지,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 특약사항까지 기억을 해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말머리를 트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다른 이야기만 하다 일어서는 그녀에게 궁금증을 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화가 났느냐"고. 그랬더니 그녀는 파안대소를 하며 어제 눈꺼풀 수술을 하고 검버섯을 치료 하였단다. 그리고 어디를 가려고 나왔는데 시간이 남아 잠시 들렸을 뿐이라고 했다.

부동산가에는 건물을 지어 파는 여성들의 군단이 있다. 그녀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고생하고 건물을 팔게 되면 보통의 여성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큰 몫의 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면 한동안 수고한 자기에게 보상이라도 해 주듯이 자신을 가꾼다. 허름한 옷을 입고 시멘트 가루를 쓰고 건축현장을 누비던 모습과는 다르게 립스틱을 바르고 유행하는 의상으로 외양을 꾸미고 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피부 관리도 하며, 그날처럼 쳐진 피부를 올려 낯설게 한 얼굴을 하고 오기도 했다.

소식이 뜸했던 노총각이 낭패한 얼굴로 온 것도 그때쯤 이었다. 여름 내내 땀 흘려 지은 버섯농사인데 버섯 등에 거뭇한 점이 생겼다고 했다. 농장을 가보니 이미 버섯들이 버려지듯 큰 바구니에 담겨 한쪽 구석에 밀려나 있었다. 여름날 습도가 많은데 쌓여있는 버섯은 곧 썩어버릴 것을 걱정하는 우리에게 '상품가치가 없는 버섯은 판로를 모른다'고 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안타까워 버려지다시피 한 버섯을 대여섯 움큼 골라 와서 말려 가루를 내었다.



지난해 여름, 땡볕 더위에 이사를 하느라고 미처 얼굴을 가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지난 뒤에 거울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청년을 낭패하게 했던 버섯위의 거뭇한 점이 얼굴과 팔에 피어 있었다. 뒤늦게 오이 마사지를 하고 미백크림을 발라 보았지만 사라지지 않았고, 화장품으로도 숨겨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의사의 진료를 받기로 하고 이름난 병원을 찾아갔다. 오전환자를 열 명만 접수 한다기에 새벽밥을 먹고 서둘러서 간 덕분에 1번으로 도착했다. 유명세 때문인지 곧 이어 대기자들이 뒤로 줄을 섰다. 경기도에서 온 이는 첫차를 타고 왔다고도 했다. 문진을 하고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수많은 환자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잠시 후 '타다 탁 탁탁' 레이저 불빛소리와 검버섯이 지워지는 냄새가 날 때, 왜 그 청년이 한 말이 생각났는지. '상품가치가 없다' ... 여자의 피부는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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