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 불안한 농심(農心)

2020.01.22 16:27:12

신한서

전 옥천군친환경농축산과장

24절기 가운데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 날에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눈 대신 겨울비가 장맛비처럼 내렸다. 옥천에 내린 비가 무려 52㎖나 된다.

실개천에는 흙탕물이 제법 흐르고 철철 넘치는 교동저수지는 청둥오리 몇 마리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향수공원 매실도 붉은 입술 단장하고 시장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동장군이 맥을 추지 못하면서 이상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며칠 전 고향에서 인삼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친구를 만났다. 한겨울인데도 인삼밭에 풀이 자라서 제초제를 3일간이나뿌렸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울진 후포항으로 고향 친구들과 부부동반 겨울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겨울 여행이 아니라 완연한 봄놀이였다. 후포항 바닷바람에 봄 향기가 가득했다. 양지바른 해변에는 풀이 자라 발목을 덮었다. 어린 시절 봄에 풀을 베어 소에게 먹이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제주도에서는 한낮기온이 23.6도까지 오르고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고 한다. 1973년 기상관측 이래 처음 있는 현상이란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 농민들은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다. 이 같은 기상이변이 올 농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걱정이 갈수록 태산이다.

첫째,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 농작물과 가축에 대한 병해충 발생이 우려된다. 각종 병해충이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그대로 월동하기 때문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하여 미국선녀벌레나 꽃매미 등 외래 해충이 확산하고 있다. 먹노린재와 진딧물 등 병충해 창궐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구제역이나 돼지 열병 같은 가축전염병도 은근히 걱정이다.

둘째, 농작물에 대한 냉해 발생 우려가 크다.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 복숭아, 사과, 감, 호두 등 농작물이 봄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꽃피는 시기를 앞당기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꽃샘추위가 갑자기 닥치면 꽃이 얼어 커다란 피해를 보게 된다. 농작물들이 갑자기 변하는 기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독한 감기에 걸리거나 얼어 죽게 되는 것이다.

기상 이변은 이제 먼 훗날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 코앞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문제다. 지금부터라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국민들도 비닐과 일회용품,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줄이는 등 다소 불편하더라도 생활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농업인들도 화학비료와 농약, 제초제 사용을 줄이고, 생태와 환경을 보호하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먼 거리 수송에 따른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지역 내 생산·소비 체계를 확대하기 위한 로컬푸드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증진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농정으로 조속히 전환해야 한다. 올해부터 공익형 직불제를 시행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농업인들의 환경·생태적 활동에 대한 보상과 직불을 확대하고, 기후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는 대규모 유리온실과 식물공장, 유전자조작, 대규모 축산에 대한 지원 여.부를 신중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가는 물론, 나아가 지구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 농민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왔다 얼어 죽는다는 일 년 중 가장 추운날이 소한(小寒) 이다. 이 같은 엄동설한에 장맛비가 내리고 봄 같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기상이변 현상이 심상치 않다. 농민들의 마음은 무겁고 불안하다. 경자년 새해, 우리 모두 기상이변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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