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원두를 냉동 보관하는 것에 관하여

2019.12.09 16:44:47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커피를 직접 추출하는 분들에게 "원두를 조금씩 자주 사라"고 조언한다. 커피의 향미란 볶이는 순간부터 시들어가기 때문이다. 향미가 사라지는 속도를 늦출 줄 알아야 커피전문가라는 말을 듣는다. 원두를 다량 가지게 된 상황일 때,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답을 찾기 위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커피 원두는 섭씨 200도 안팎에서 로스팅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살균된다. 물기도 대부분 증발해 수분율이 5%를 밑돌기 때문에 좀처럼 부패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시중에 판매되는 커피원두의 유통기한은 1~2년으로 표기된다. 그러나 보관 상태에 따라 빠르게 산패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산패가 시작되면 향미가 급속히 사라져 맛이 떨어진다.

커피를 볶으면 12시간 가량 공기 중에 노출시켜 이산화탄소를 날려보낸다. 이산화탄소가 원두에 배면 맛이 거칠어 지기 때문이다. 원두가 포장되면 2주 정도까지는 맛에 큰 변화가 없지만, 3주에 접어들면서 향미가 약해지는 동시에 없던 거친 맛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원두 포장을 뜯고 나면 열고 닫는 과정에서 산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산패는 운명적으로 가속도를 낸다. 원두를 구매할 때 하루 소비량을 감안해 2주에 한번씩 구입하도록 1회 구매량을 조절하는 게 좋다.

커피 테이스터들은 로스팅을 한 지 2주 지난 커피에서 향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로스팅한 지 두 달이 지나야 신선도가 떨어짐을 감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커피의 신선도를 따지는 절대적인 기준과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할수록 좋은 커피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화학반응은 커피 신선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로스팅하는 동안 많은 기체 또는 휘발성 화합물이 생성된다. 로스팅 과정이 끝났다고 휘발성 물질이 모두 사라진 게 아니다. 커피 원두에서 그윽한 냄새가 난다는 것은 기체가 발산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로스팅을 한 후 24시간 안에 이산화탄소로 구성된 대량의 기체가 커피 원두에서 방출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휘발성 물질이 빠져 나가 커피의 향이 옅어진다. 휘발성 물질이 원두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휘발성 물질의 손실이 커피의 신선함을 뺏는 주요 원인이다.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간접적인 요인은 주변의 온도다. 고온은 화학반응의 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보관하는 장소가 따뜻할수록 향미 성분이 더 빠르게 방출되고 산패 현상도 빨라진다. 또 수분활성이 높을수록 신선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커피 원두가 수분을 흡수하면서 원하지 않는 화학반응이 발생하면서 향미가 저하되는 것이다. 빛이 커피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주장은 단지 빛으로 인해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 아니다. 원두 내의 중요한 향미 화합물의 화학결합을 깨뜨릴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가진 빛의 파장이 작용하면 신선도가 역시 떨어질 수 있다.

오랜 기간 커피를 보관해야 할 경우, 향미 손실을 유발하는 화학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기도 한다. 온도가 낮을수록 휘발성 물질의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원두를 냉장고에 넣을 때에는 완벽하게 밀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장고의 냄새가 모두 원두에 배기 때문에 못 먹는 커피가 된다. 온도를 더 낮추기 위해 냉동고에 커피 원두를 넣는 행위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냉동고에 넣은 경우 향미 손실이 훨씬 줄어 들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에는 한 가지 더 주의가 필요하다. 냉동고에 보관할 때는 한 번에 추출할 수 있는 분량으로 나눠 보관해 꺼낸 원두를 다시 냉동고에 넣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온도차로 인한 응결현상으로 원두에 물이 생겨 향미 손실이 가속화한다.

커피 원두를 냉동할 경우에 수분이 날아가면서 조직에 변화가 생기는 냉동상(freezer burn)을 주의해야 한다. 원두를 냉동실에서 꺼냈을 때 표면에 물방울이 생긴다. 물이 생기면 산패를 가속화하며, 원두를 다시 냉동실에 넣을 때 얼음 결정을 형성케 함으로써 품질을 떨어뜨린다. 냉장은 결정이 형성될 위험은 없지만, 물방울이 생기는 것이 여전히 문제다. 결국,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최선의 선택은 그 때 그 때 볶아 마시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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