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양쪽 끝에 와서 보니

2019.10.21 16:16:06

[충북일보] "때(timing)는 얻기 어렵고(難得者時), 기회(chance)는 놓치기 쉽다(易失者機)" 조선 중종 때 조광조가 한 말이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쇠는 달궈졌을 때 쳐야 한다.

*** 좌우에 멋진 풍경은 없었다

가을 하늘이 높아만 간다. 지상의 정치는 자꾸만 난분분하다. 하늘의 구름마차는 잘도 달려간다. 땅 위의 정치는 진영논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저주와 혐오, 비방과 조롱으로 아수라장이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조국사태는 정치의 무책임이 만든 혼돈이었다.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갈등하고 반목할 일이 아니었다. 국민이 둘로 쪼개져 서로 싸울 사안이 아니었다. 정치권 스스로 엄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권은 갈등 조정자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여론을 수렴하기는커녕 앞장서 분열과 대립을 증폭시켰다. 아집의 정치로 국론을 분열시켰다. 상식까지 무너트려 가치체계를 혼란스럽게 했다. 국가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여권은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 스타일을 보는 듯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폐단을 보여줬다. 특권과 특혜, 반칙이 통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실체를 보여줬다.

야권은 무얼 했나.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더 한심했다.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조정자를 자처하지 않았다. 극한의 제로섬 게임에 몰두했다. 광장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험악한 대치로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거 말고는 없었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여야는 타협의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국민의 가슴을 찢어놓기만 했다. 조국사태는 특히 청년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아주 깊고 아픈 상처였다. 조 전 장관의 장관직 사퇴와 별개로 큰 아픔이었다.

좌우 두 진영이 가본 길의 양쪽 끝엔 아무 것도 없었다. 좌든 우든 그 끝에 뭔가 있을 줄 알았다. 보다 멋진 보수와 진보의 풍경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없었다. 냄새 나는 진흙탕만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만 한 가득이었다.

진짜 진보와 진짜 보수가 나서야 한다. 언행일치의 사람들이 중심에 서야 한다. 그래야 경쟁할 건 경쟁하고 협조할 건 협조할 수 있다.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기초다.

제기된 의혹의 실체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엄정하지 않으면 공정과 정의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허물어질 수 있다. 검찰은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조국사태가 남긴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국민들은 여야가 내년 총선을 의식하는 것도 잘 안다. 뭐가 선거에 유리한지만 계산하고 있다는 것도 꿰뚫고 있다. 국민들은 점점 현명해지고 있다. 정치권은 돌아봐야 한다. 지금의 현상을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군중들의 광장 행은 정치가 소임을 다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이번의 '두 패 현상'도 다르지 않다. 무당파가 늘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권은 잘 헤아려야 한다. 독선은 나라를 망칠 뿐이다. 지금 상황은 정치의 실패에 대한 반영이다.

*** 냄새나는 진흙탕만 있었다

국민은 다 같은 국민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이 다를 수 없다. 서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정치권의 인식은 다른 문제다. '옳음'에 대한 확신이 반드시 옳은 게 아니다. 철저한 자기 확신이 범하는 오류 사례는 너무도 많다. 조국사태는 상식의 영역에 있었다. 그저 잘못을 묻고 따지고 규명했으면 됐을 일이다.

그런데 너무 멀리 갔다. 국민은 반으로 갈리고 국가는 길 잃고 표류했다. 수준 낮은 정치 때문에 벌어진 나쁜 결과다. 정치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조절돼선 곤란하다. 그런 저울로 국민의 상식과 정서를 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모두 함께여야 한다. 함께 모이는 건 시작이고, 발전이다. 그리고 성공의 기초다. 정치도 그렇게 하면 된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좋은 사람끼리 하면 된다. 진실은 진실, 거짓은 거짓 일뿐이다. 진실과 거짓이 바뀌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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