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앞선 한국 커피의 역사

2019.07.22 16:08:49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일제강점기가 남긴 편견이라고 할까, 식민사관이라고 할까· 우리가 일본에게서 커피를 배웠다는 그릇된 인식이 퍼져 있다. 심지어 일본의 커피 역사가 우리보다 170년 또는 200년 앞선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도 여전하다. 그렇게 말한다면,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말로 '신친일파'다. 범국민적 정신운동으로 타오르고 있는 일본제품불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따져 봐야 한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일본은 1700년쯤 규슈의 나가사키 앞에 있는 '데지마 섬'에 네덜란드 상인을 거주시키면서부터 커피 문화를 만들어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인이 이때부터 커피를 마셨다는 물증은 없다. 데지마 섬을 드나들던 통역관이나 상인들이 커피를 마셨을 수 있다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조선이 오히려 앞선다. 1653년 효종 때 제주도에 표류해 13년간 조선에 머물다간 36명의 하멜 일행은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를 실어 나르던 네덜란드 선박의 선원들이었다.

기록에 근거해 비교하면, 한국이 일본보다 커피를 먼저 접했다. 일본이 커피 생두를 처음 수입한 기록은 1858년에 나온다. 하지만 이는 일본인이 아니라 당시 체류하던 외국인들이 마시기 위한 것이라고 탄베 유키히로는 저서 '커피세계사'에서 밝혔다. 일본에서 커피를 파는 공간은 1888년에야 등장한다.

반면 조선은 1883년 8월 제물포항을 통해 커피 생두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초대 주한 영국 영사를 지낸 윌리엄 칼스는 1884년 5월 부임하면서 겪은 일을 '조선풍물지'에 담았는데, 여기에 커피를 조선 땅에서 마셨다고 증언했다. 앞서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1884년 1월 한강변 '담담정(The house of sleeping waves)'에서 커피를 접대 받은 사연을 적었다. 그는 특히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를 받아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커피를 식후에 마셨다"고 기록해 당시 항간에 커피 문화가 퍼져 있었음을 증언했다.

1867년에도 일본의 지도층에게조차 커피는 낯선 존재였다. 에도시대가 막을 내리기 1년 전, 최후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나폴레옹 3세에게서 초대를 받고 동생인 도쿠가와 아키타케를 보냈다. 그는 항해일지에 "식사 후 '카헤(커피)'라는 콩을 볶은 탕이 나왔다. 설탕과 우유를 넣어 마시는데 가슴이 꽤 상쾌하다"고 적어 커피를 그제야 접했음을 고백했다. 조선인이 커피를 만난 시기는 이보다 20여년 앞선 1840년대 헌종 때이다. 김대건 신부(1821~1846)가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에게서 커피를 제공받았다고 전해진다.

일본인 스스로 커피의 유래를 네덜란드와 교역한 1700년대가 아니라 150년쯤 뒤인 19세기 중반 러시아와 사무라이가 교류한 시기라는 주장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맞은편의 일본 땅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는 일명 '사무라이 커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커피의 명인'으로 불리는 나리타 센조는 "1855년쯤 변방인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지키기 위해 교토에서 파견된 사무라이들이 손발이 붓는 풍토병을 앓고는 러시아 사람들에게서 전해 받은 커피를 마시며 치료 효과를 보았다"면서 이것이 일본 커피의 기원이라고 밝혔다.

역시 이런 스토리라면, 우리는 김대건 신부 보다 50여 년 앞선 1780년대 정조 시대에 커피를 처음 접한 정황이 있다. 이승훈 선생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선생은 40여 일 동안 프랑스 선교사들과 숙식을 하면서 커피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생은 1785년 조선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우고 정약용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두 사람은 후에 처남 매부 사이가 됐는데, 정약용 선생께서 커피를 드시고 각성효과를 누리며 기중기와 같은 서구문물을 만든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일본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커피를 받아들여 그들보다 먼저 격조 있는 커피 문화를 꽃피웠다.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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