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커피비평가협회장
강둑 경사를 따라 밤사이 개나리가 피어났다. 프루스트가 마들렌 향기를 맡는 순간 과거의 한 때로 빠져 들었던 것처럼, 초등학교 시절의 봄이 보였다. 담장을 대신한 철망을 따라 피어난 개나리는 무심천으로 이어졌다. 북문로와 사직동을 잇는 돌다리가 내려다 보일 땐 첨벙첨벙 물 속을 뛰어 다니며 피라미를 몰던 동무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졸업한 뒤 4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벗들의 얼굴이 이토록 또렷하다니……
추억은 기억보다 강하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종종 비슷한 경험을 한다. 잘 익은 파인애플과 패션프루츠를 함께 입안에 넣은 듯한 '콜롬비아 킨디오 라모렐리아 농장 커피'는 해발 2000m 커피 밭에 섰을 때 이마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준 한 줄기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결이 고은 복숭아의 속살을 한 입 베어 문 듯한 '에티오피아 함벨라 실린가 농장 커피'는 두 살 난 아기를 품고 커피열매를 수확하던 열 여섯 살 아프리카 애기 엄마의 따스한 미소처럼 정겹다.
사실, 더 미스터리(Mystery)한 것은 커피를 마시면서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능력이 어디서 왔느냐는 점이다. 강아지도 맛이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과거의 한 때를 생각할 수 있을까· 타잔의 친구였던 침팬지 '치타'는 맛있는 바나나를 먹으면서 타잔과 함께 줄타며 정글을 뛰놀던 때를 그리워했을까·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언어 능력(linguistic competence)이 바로 그것인데, 인류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사고할 줄 알게 됐고, 따라서 지식을 쌓아 갈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만~7만 년 전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언어 능력을 갖게 된 인류는 마침내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로 퍼진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탄생한 것이다.
커피를 음미하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우리의 능력도 바로 이때 부여됐다. 고로, 커피를 마시면서 향미를 감상하고 추억에 잠기는 것은 매우 인간적이며, 위대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이 능력을 활용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은 듯싶다.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고 "너는 어디에서 왔니·" "너는 어떤 맛을 지니고 있니· "그 향미를 얻게 된 사연은 무엇이니" "너가 나의 관능이 되어 줄 때 나는 어디로 시간여행을 갈 수 있을까·"라고 속삭인다면, 그 커피는 우리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추억을 선물한다. 모든 커피가 우리의 감각(Sensation)을 지각(Perception)으로 안내하고, 마침내 인지(Cognition)와상상(Imagination)로 승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마시는 커피가 깨끗한 지 따져야 한다. 깨끗함의 진가는 커피의 향미를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섬세함(Delicate)이란, 여리고 약한 면모들이 제 각각 억눌림이 없이 작은 매력들을 고르게 발산하는 상태에서 감지된다. 커피가 지닌 모든 면모들이 존중 받는 평화로운 향미의 세계를 비유한다. 델리케이트는 엘레강스(Elegance)와 함께 커피 향미에 대해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다. 우아함 역시 어느 곳 하나 모난 구석이 없어야 한다. 모든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 상태, 하모니를 이룬 상황에서만 맛볼 수 있는 관능인 것이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 선생께서 생전에 최고의 작품을 "엘레강스하고 델리케이트하다"고 묘사한 것도 이와 같은 심정에서 였을 것이다.
지저분한 유리창을 통해서는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쓰고 떫고, 마르고 할퀴고, 찌르고 아린 맛은 유리에 묻는 때와 같다. 사실 이런 것들은 맛이 아니라 자극이고 통증이다. 우리의 관능이 통증을 겪는 상황에서 과일과 같은 경쾌한 산미와 꽃 같은 화사함, 꿀을 연상케 하는 단맛 등 스페셜티 커피의 덕목을 누릴 수 없다. 결점들이 이들 향미를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깨끗한 커피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자라난 환경을 올곧게 반영하는 커피를 찾아야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커피는 '탄생의 비밀'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그리스 비극보다 잔인하다. 좋은 커피를 찾는 걸음은 이름을 묻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향미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없는 커피는 성장과정을 알 길 없는 인조인간과 같다. 인성이 없다는 것은 커피에겐 향미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인스턴트커피보다 지루하고 따분하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과 커피답지 못한 커피라는 표현은 결국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