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커피시장이 최근 10년새 3배 이상 커져 그 규모가 11조 7천억 원을 넘어섰다. "물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는 말이 실감나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커피는 교양이다"는 말이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커피를 이야기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커피이야기 중 널리 회자되는 것이 기원설이다. 커피의 탄생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에덴동산의 기원설'이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생명체는 천지창조 때 만들어져 에덴동산에 있어야 한다. 커피나무는 과연 에덴동산의 어디에 있었을까·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에덴동산 한 가운데에 '생명나무(tree of life)'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가 있었다고 전한다. 인류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던 것인데,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음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창세기는 기원전 1446년~1406년 모세에 의해 쓰여졌는데, 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선악과'로 표기했을 뿐 '사과'라고 적시하지 않았다. 선악과가 '사과'라고 구체적으로 표기된 것은 창세기가 쓰인 지 3천년이나 지난 뒤였다.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존 밀턴(John Milton)이 1667년 펴낸 대서사시 '실락원(Paradise Lost)'에서 선악과는 비로소 '사과'라고 명기된다. 밀턴 이전까지 선악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나무였다.
또 하나의 주장이 있는데, 기원후 2세기경 성경이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는 견해이다. 유대인 성경번역가인 아킬라 폰티쿠스(Aquila Ponticus)가 구약 제24권 '아가서' 중에서 '솔로몬왕의 노래'를 번역하면서 선악과를 의미하는 부분을 사과나무라고 명기했다. '나쁜'이란 의미의 형용사 '말루스(Malus)'에 어원을 둔 'Malum'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는데, 말룸은 '악'을 뜻하면서도 '사과'를 뜻하기도 하고 배의 돛대를 일컫기도 한다. 이런 탓에 선악과를 '사과'로 오해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창세기에 "선악과는 이를 먹는 자는 눈이 밝아지고,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게 된다"고 적혀있다. 이 대목은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각성효과(Awakening effect)를 연상케 한다. 사과를 먹고 눈이 맑아지고 지혜가 생겼다는 말보다는, 커피를 먹고 정신이 깨어나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도록 뇌가 각성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또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에덴동산에 한 그루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나무는 자가수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과나무는 자가수분을 못하기 때문에 선악과를 사과나무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아라비카 종의 커피나무는 자가수분을 한다.
인류는 카페인의 존재를 모른 채 수 천 년간 커피열매를 먹으며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 기이한 신체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성서에 적힌 선과 악을 구별하는 선악과의 기능은 혹시 카페인이 발휘하는 '지적 계몽(知的 啓蒙)'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스튜어트 리 앨런(Stewart Lee Allen)도 저서 '악마의 잔(The Devil's Cup)'에서 선악과는 커피열매였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선악과가 사과나무였는지, 커피나무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이것이 맞고 틀리는 진실게임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풍성하게 만들고, 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이 더 가치 있다. 스토리텔링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커피애호가들이 부쩍 늘어난 어느 날 선악과가 커피나무로 기록될 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