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바람이 있다면

2015.05.14 14:17:30

박종복

전 충북도여성발전센터소장

꼬물꼬물 손가락 발가락 10개씩 태어나 준 것도 장하고 고마웠던 첫손자다. 어려서부터 순하고 아무 탈 없이 자라준 손자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다니 감회가 깊다. 딸아이는 입학식을 다녀와 또래 친구보다 유난히 키가 커서 걱정이라며 자랑 같은 걱정을 한다. 사실 처음 외손자를 품에 안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흐뭇했는지 모르지만 난생 처음으로 23살이나 된 딸을 얻게 된 서툰 엄마로서, 외손자에 대한 격한 감정을 또 어떻게 표현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또 한번 가족이란 이름의 끈을 이어준 딸이 장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그런 마음을 표현하기 부끄럽고 서툴러 남모르게 속앓이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서먹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필자는 표현이 약한 서툰 엄마도, 서툰 할머니도 아니다. 사회 생활하는 할머니로서 딸아이의 양육을 대신해주지도 못했지만 손자가 목을 가누고, 걸음마를 띠고, 손아래 동생을 보고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편은 물론, 딸아이, 사위와 가족이라는 연대가 더욱 강해졌던 것 같다. 손주는 오면 반가운데, 가면 더 반갑다는 말도 있다. 안보면 눈에 밟힐만큼 재롱동이들이 반갑고 '친정'이란 편안함에 자주 찾아오는 딸도 예쁘고 고맙지만, 한번 왔다 가면 새간살이 남아날게 없는 아들 둘을 둔 딸 식구가 빠지고 나면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만큼 편안한 관계가 된 탓이리라 그리고 필자도 어쩔 수 없는 할머니가 된 까닭이리라.

그런 소중한 손주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난생처음 학교라는 곳에 입학했다. 사실 그리 환영하지 않았지만 딸은 출산을 하고 곧 경력을 쌓고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직접양육의 길을 택했다. 40여년 공직생활로 여성 리더로서의 삶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딸의 선택에 아쉬움이 많았지만 딸은 자녀와의 밀착된 양육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없이 지금까지 훌륭히 양육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이 선택한 길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여 그 역시 대견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을 부추기는 한국사회에서 학교로 학원으로 바쁘게 돌아가며 힘든 생활을 이겨낼 생각을 하면, 그리고 왕따, 학교폭력 같은 유쾌하지 않은 단어를 떠올리면 노파심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아동의 학업 스트레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학교생활만족도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다고 한다. 보건복지포럼은 최근 2013년 한국아동종합실태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 아동의 주관적 웰빙 상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이 결과는 유니세프의 2013년 '부유한 국가 아동의 주관적 웰빙'조사와 동일한 지표를 한국아동에게 적용해 분석한 것인데 한국 아동의 학업스트레스 지수는 전체 평균(33.3%)보다 17.2%p나 높은 50.5%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 아동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는 30개국 중 26위(18.5%)로 전체 평균인 26.7%에 못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동의 학업스트레스는 삶 자체에 대한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국가 중 27개 국가가 80%를 넘는 만족도를 보인데 비해 한국 아동들의 삶의 만족도는 60.3%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크게 낮다고 한다. 어린이 10명 중 4명은 한창 뛰어놀고 꿈꾸어야할 나이에 벌써 불행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니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이러한 현실이지만 첫 손주의 입학에 설레고 대견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럭무럭 자라 산책도 같이 해주고 말벗도 되어준 의젓하고 사랑스런 손자이기 때문이다. 바램이 있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 보다 행복한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지금처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까지 위로를 준 것처럼 타인을 배려하고, 착하고 인성 반듯하게 성장해 주었으면 좋겠다. 공부에만 열중하기보다 다양한 취미와 체력단련을 통해 매사에 책임감 있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어떠한 일에 있어서도 즐기는 방법을 아는 행복한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당당하게 밀착육아의 길을 선택하고 미련 없이 그 길을 간 딸아이가 그렇게 가르치고 손자도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필자는 그들의 '가족'으로서 지금처럼 변함없이 그들의 곁에서 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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