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청사진

2015.01.28 13:53:25

정관영

공학박사·충청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

오두막이나 초가삼간 정도라면 설계도가 없더라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규모가 크거나 웅장한 예술적인 건축을 위해서는 정교한 설계도가 필수다.

인생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리라. 되는 대로 산다면 굳이 인생설계를 거론할 필요가 없지만 좀 더 보람 있고 뜻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미리 청사진을 그려야 할 것이다. 한 개인의 생애를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애를 건축하는 작가에 해당하며 아담한 생애를 창작하기 위하여 우선 자신의 삶을 슬기롭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집이 필요한 사람이 새 집을 짓고자 할 때는 전문적 건축사에게 맡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인생의 설계는 남에게 부탁할 성질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남의 조언을 참고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필경 자기의 삶은 본인 스스로 설계할 수밖에 없다.

인생이 건축처럼 단순하고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항상 변동하는 상황에 주체적 결단으로 대처해야 할 일이다. 조언자가 늘 따라다닐 수 없는 한 남이 만든 설계는 별로 쓸모가 없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은 자기가 주체적으로 살아야 마땅하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생설계의 마지막 결정은 본인 스스로 내려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인생은 내가 스스로 설계해야 하고 내가 스스로 살아야 한다. 어떠한 모양의 집을 짓든, 어떠한 크기의 집을 짓든 목표와 방식도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모든 사람이 거울로 삼아야 할 이상적 인간상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상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이상으로 삼았으며 스피노자는 정념(精念)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태연자약한 인물이 되라고 권장하였다.

불가에서는 세속의 번뇌를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이상으로 가르쳤으며, 유가에서는 학덕이 높은 성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성경에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부드러운 인간상을 들고 있다. 마음은 온유하게, 말은 부드럽게, 행동은 겸손하게 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 또는 종교의 교설은 이상적 인간상의 대체적 윤곽을 제시했을 따름이며 내적인 모습까지를 일일이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가르침 가운데서 어떤 하나를 신봉한다 하더라도 그 테두리 안에서 세부의 모습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여지는 남을 것이다.

이럴 진데 사람들은 누구나 소질과 취향 등에 있어서 남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이 처해 있는 사회적 환경에도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이러한 여건들은 삶을 설계함에 있어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마땅하다.

건축을 설계할 경우에 확보된 대지의 크기와 지형, 마련된 자금, 건물의 용도, 건축자재의 시장상황 등을 고려하여 실정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당연한 것과 마찬가지의 사정 일게다.

우리는 나름대로 인생을 설계할 자유를 가졌지만 다른 사람의 권익과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방종만은 삼가야 한다는데 있다. 사회의 규범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 개인의 목표를 추구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만 확고했다면 반사회적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사회의 규범을 어기겠다는 생각을 설계에 넣지 않았더라도 규범을 지키고자하는 적극적인 의도를 삶의 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책임은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대다수 소시민들은 전통적으로 작은 행복을 가정에서 찾지 않을까.

필자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은 소홀히 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대화는커녕 녹아떨어지기 일쑤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잠옷이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촉감이 좋다. 메모가 눈에 띈다. '여보!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고맙고 사랑해요. 짝꿍'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내에게 많은 생일선물을 받았지만 잠옷이 사랑의 증표라고 생각하니 온몸이 훈훈해 진다.

피곤하고 지칠지라도, 퇴근하고 들어온 나에게 정성을 다하면서도 잘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아내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언제 샀는지도 까마득한 허름한 체육복과 오래도록 입어 버리고자 내어 놓았던 내 티셔츠를 입고서도 가계부와 씨름하는 아내다.

모처럼 금일봉을 선심 쓰듯 내어 놓으면서 필요한 것 사서 쓰라고 했더니, 옷 한번 사야겠다고 뛸 듯이 좋아하면서 백화점에 갔다가, 나와 아이 들것만 잔뜩 사들고 온 아내다. 이번 달에 시어머니 생신이 있는 달이니, 좀 아껴 썼다가 후하게 용돈 드려야겠다고 말하는 아내의 마음 씀씀이에 후덕함이 묻어난다. 아내를 위해 오늘은 속옷가게라도 한번 들려야겠다.

화창한 내일의 태양을 함께 꿈꾸기에도 인생은 너무나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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