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디셈버'

2014.12.23 17:58:33

길지선

2006년 여름, 청주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동안과 올 한해를 되돌아보며 내게 따뜻한 위안과 행복감을 준 사람들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곳으로 발령을 받고 막막함과 약간의 두려움, 설레임을 안고 혼자 지내게 되었다. 새로운 도시와 새 직장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무엇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그리웠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묵묵히 나를 달래던 중 청주에도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려한 영상과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어찌하여 내가 보고 싶은 영화들은 모두 서울에서만 상영하는가. 하지만 그 영화관 덕분에 주말마다 버스에 오르던 수고와 피로감이 줄고, 지금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애정도 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크린을 통해 유럽의 어느 도시를 거닐거나 나의 이상형인 배우 뱅상 카셀, 76년 평생을 사랑해도 부족한 강원도 정선의 노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짜릿하고 황홀한 환희를 주는 나의 멋진 영화들. 그 공간에서 나는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어준 사람들이 고마웠고, 함께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친구 같은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다채로운 영화들 속에서 수많은 일상을 경험했고, 덕분에 내 삶의 영역도 점점 확장되어 갔다.

성안길 입구에 위치한 청주의 토박이 서점. 그곳은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활짝 열어둔 문 덕분인지 늘 사람들로 밝고 환한 기운이 가득했으며, 나 역시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면 늘 그 장소에서 만났다. 서점의 직원들은 손님이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언제나 친절한 미소를 보냈고, 독서에 방해라도 될까 조심스레 책 정리를 하곤 했다.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배려가 돋보이는 이 공간이 계속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되도록 이곳에서 책을 샀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정기적인 독서모임은 내게 인문학적 사고와 삶의 지향성을 정하는데 충분한 힘이 되어 주었다. 저마다 따로따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한 달에 한번 함께 읽은 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삶의 균형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 서점이 문을 닫아 더는 찾을 수 없는 공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는 고마운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 하나 내게 큰 위안을 주는 공간은 바로 회사와 이웃한 작은 카페다. 동료들과 점심식사 후 가벼운 산책 겸 들르는 그 곳은 정성스럽게 커피를 만든다. 단골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나만의 커피와 하하, 호호 즐겁고 따뜻한 수다가 있는 그 공간은 일상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적적함도 사라지게 해 주었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른한 평화와 행복. 그래서인지 낯선 도시였던 청주는 내게 자연스럽다.

이제 곧 12월과도 안녕을 말해야하는 때가 되어 차분한 마음으로 한해를 돌아본다. 세상을 따뜻하고 보람차게 사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12월과 '안녕'을 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그리고 이웃들에게 부드러운 눈빛과 몸짓, 다정한 말로 아름답게 하루하루를 살 것을 다짐한다. 특히 나주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직장 동료들의 건강과 평화에 먼저 마음을 보내고 적극적으로 함께 하리라.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그 공간 안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Bye,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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