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의료인의 삶 - 흥덕보건소 정구택, 심상희 방문 간호사

눈 마주치고 대화하며 미세한 변화까지 살펴
홀몸노인·기초수급자 환자에게 '딸 같은 존재'
간호사 한명이 780명 관리…인력 태부족

2014.02.11 19:56:13

지난 7일 만난 김병두(78·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천사가 찾아온다'고 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천사는 병도 치료해주고 말동무가 돼 준다고 한다. 김 옹은 천사를 기다리는 내내 방을 청소하고 옷 매무새를 고쳤다.

오후 3시. 집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방문 간호사에요. 안에 계세요?"

"어어, 왔구만. 문 열려 있으니까 들어와."

잠시 후 호리호리한 체격에 부드러운 눈매, 그리고 한 손엔 큰 가방을 들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흥덕보건소 소속 정구택(여·52), 심상희(여·46) 방문간호사다.

오매불망 천사를 기다렸던 김 할아버지의 기쁨도 잠시였다. 정 간호사는 부엌에 널브러져 있는 주전부리를 보더니 잔소리(?)를 시작했다.

김병두(78)옹이 자신의 집을 찾은 방문 간호사들로부터 건강 상담을 받고 있다.

ⓒ이주현기자
"아이 참, 할아버지. 당뇨엔 기름진 거 몸에 안 좋아요. 그리고 점심은 드셨어요? 혈당 떨어지면 안 되는데…."

정 간호사는 마치 김 할아버지의 딸처럼 보였다. 온갖 아양을 다 들어주고 참견도 했다. 딱딱하게 치료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적절한 관리를 받으면서 마음까지 치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즉, 육체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치료도 하고 있는 셈이다.

정 간호사는 "김 할아버지 집에 올 때마다 밝은 모습을 보이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세세한 특징까지 꿰고 있었다.

둘은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 할아버지가 체혈을 하는 동안 방 안을 살펴봤다. 곳곳에 널려 있는 약들, 당뇨 환자치곤 약이 많아 의아했다.

전립선암 호르몬제인 '안드로클(225㎎)'과 과민성 방광염 치료제 '베시케어(5㎎)'였다.

김 할아버지에게 '당뇨말고 또 무슨 병을 앓고 있느냐'고 묻자 자신을 전립선암 환자라고 했다.

그에 의하면 4년 전, 전립선암으로 큰 수술을 치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불연듯 찾아온 수술 후유증으로 온 가족이 호된 고통을 치렀다.

김병두(78)옹이 혈당을 점검 받고 있다.

ⓒ이주현기자
밤이면 밤마다 고통을 호소했고 약을 먹어도 그때 뿐이었다. 치료를 위해 보은연세병원을 찾았지만 이곳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충북대병원으로 옮겼다.

병은 호전되고 있었지만 가슴은 곪아갔다. 만만치 않은 병원비와 몇년 째 김 할아버지의 곁에서 간호를 해야했던 부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깥 세계와 단절된 병원 생활이 고통을 더했다.

그러나 지금 김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에서 마치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듯한 기분으로 장기 치료를 받고 있다. 방문간호사가 한 달에 한 번 집을 찾아와 식습관에 대한 전문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잠시 후 김 할아버지의 체혈이 끝났다. 김 옹은 정 간호사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땐 수많은 환자와 함께 있어서 세세한 관리를 받기 힘들었다.

특히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김 옹은 병원에 가는 것조차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문 간호를 받으면서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 몸 상태의 미세한 변화까지 간호사가 놓치지 않아 적절한 고나리를 집에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김 옹은 체혈과 혈압을 점검 받고 당뇨 관리 교육을 받았다.

"방문 간호사들은 정말 친절해. 하나부터 열까지 잘 돌봐주고 함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외롭지가 않아. 이 제도 덕분에 생활에 큰 불편을 못 느끼고 있는데, 이 제도가 더 활성화 되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어."

현재 청주지역에는 모두 6천241명(흥덕 2천917명, 상당 3천324명)의 기초생활수급 환자들이 있다. 이들을 돌보는 방문 간호사는 모두 8명. 한 간호사가 약 780명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

독거노인 환자나 기초수급자 환자들은 방문 간호사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또 그녀들을 '딸'이라 부른다. 그들의 딸처럼 삶의 애환을 들어주고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문 간호사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환자들은 방문 간호사 제도가 더 활성화 되길 바랄뿐이다.

/ 이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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