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의 진실

2013.10.21 14:23:09

변혜정

충북도 여성정책관

지난 주말에는 직원 자녀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일요일 점심이라 부조금만 내고 집에 가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정말 애쓰시는 직원이라 축하해주고 싶었다. 사무실에서의 칙칙한 모습이 아닌 신부아버지로서 멋을 낸 모습은 새신랑처럼 멋져 보였다. 딸을 보내는 아버지로서 서운할 것 같았지만 시종일관 웃는 것으로 보아 아주 기쁜가보다. 성 평등을 실천하는 부서의 직원으로, 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위를 맞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보통 때처럼 혼주에게 인사하고 식사하고 결혼식을 보다가 나왔다.

젊었을 때 결혼식 참석은 신랑신부를 알아서 찾아가는 축하자리였다. 그러나 요즘은 신랑신부보다 부모를 알아서 가는 자리가 많다. 또 큰 행사를 치르는 자에 대한 덕담과 축하라기보다 의무관계(·)로 가야 할 때가 많다. 내가 갔으니 너도 와야 한다는 상호 품앗이를 넘어 재직 중에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상사에 대한 예의와 업무 관계망 때문에 참석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장의 내부보다 외부에 사람들이 더 많다. 평소 아는 사람과 이야기하느라 결혼식은 뒷전이 되기도 하다. 물론 결혼식을 하면서 식사를 하는 곳에서는 끝까지 결혼식을 보기도 한다(그러나 이런 곳의 예식비용은 너무 비싸다). 또 샌드위치 공휴일에 결혼식을 잡으면 민폐라면서 신랑신부보다 손님들을 배려하는 택일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결혼식과 장례식 참석에 대한 나름의 약속이 있다. 축하하고 싶은 결혼식만 참석한다는 것! 의무적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장례식은 슬픔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조금 범위가 넓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봉투만 전달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봉투가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 하지만 필자는 봉투보다는 참석에 더 의미를 두었다. 그러다보니 주말에는 정말 바쁘다.

그런데 요즘 필자가 정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졌다. 일단 청주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서울에 있는 의례에 봉투만 전달하는 일이 많아졌다. 믿기 싫지만, 결혼식 참석보다는 봉투를 더 반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필자에게 배달되는, 딱 한번 본 사람이나 업무상 관계가 있는 분의 청첩장 때문에 어렵다. 왜 필자에게 이런 청첩장을 보냈을까· 가야 하나· 가지 말고 부조금만 보내야 하나· 그냥 기분 좋은 일을 알리는 것이겠지. 그러나 결혼당사자는 모른다 할지라도 혼주도 잘 모를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조직 관계망 안에서 일하다보니 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듣는다.

언제가 독일 여행지에서 보게 된, 신부님과 증인 두 명, 몇 명의 지인들, 그리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박한 부케를 든 신부와 단정한 양복을 입은 신랑의 결혼식이 떠올랐다. 또 몇 년 전 참석했던 후배 결혼식도 생각났다. 정말 필요한 물건, 주고 싶은 물건으로 축하하는, 공원에서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부담없는 격려와 축하, 그리고 즐거움의 자리였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아들 딸 두 명이 있는 필자가 그간 낸 부조금을 생각할 때 새로운 결혼식을 기획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필자는, '결혼당사자인 아이들의 기획에 맡길 것이라는 것, 축하받고 싶은 사람들만 초청 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여전히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화려한 결혼식, 아니면 각자의 이야기로 정신없는 시장터 같은 결혼식,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자가 와서 부조금을 내는 결혼식은 반대한다. 특히 부조금은 축하의 표현일 뿐! 관계망을 돈독하게 하는 복잡한 의미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너무 당연한 주장이지만, 정말 결혼식은 부담의 자리가 아닌 축하의 자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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