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한라봉의 맛은?

2013.04.22 17:51:38

변혜정

충북도 여성정책관

구입물건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마트를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9천80원 대두유가 2개 찍힌 것을 발견한 것은 마트를 출발한지 20분 지나서였다. 운전 중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고객 안내 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포기할 까 하다가 저번에도 번거로워서 포기했던 것이 떠올라 결국 차를 돌렸다.

출발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몇 바퀴 돌다가 주정차 비상등을 켜놓고 입구에 있는 민원실에 들렸다. 주차금지구역이라고 제지하는 단속요원에게 구입비용 확인만 한다고 간청했지만 '안됩니다'만 연발한다. 그럼에도 딸에게 차를 맡기고 뛰어간 민원실에서의 대답은 너무 형식적이었다. 취소와 함께 죄송하다는 말 이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365일 매일 운영하는 이렇게 큰 대형마트에서 고객 서비스 방법이 이 정도라는 것에 일단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대두유 개수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사실, 설상가상으로 주정차로 인해 어떤 부부에게 XX년 이라는 소리를 들어 더 커진 짜증은 결국 폭발했다. 이것은 '죄송하다'는 팀장의 답변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환불은 당연하며 앞으로의 대처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순간 고민도 했다. 돌아가서 확인한 9080원의 가치가 왕복 30분, 주유비, 에너지, 스트레스 이상일까? 또 잘못한 계산원은 이것을 빌미로 해고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 가치와 실리 그리고 제도적 가치와 실리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쓴 것은 계속 그 마트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의 제도적 대안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큰 뜻(?)이기도 했다(물론 동승한 딸에 대한 교육적 가치도 있었다). 결국 나의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으로 관리 팀장은 죄송하다며 한라봉 한박스를 주었다. 죄송하다는 팀장에게 더 이상 화를 내기도 어려워 앞으로의 대안을 준비하시라고 자존심을 부렸다. 한라봉 한박스를 받기도, 그렇다고 안받기도 참 애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결국 집에 온 것은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오래 만에 동네마트가 아닌 주말 큰 마트에서 산 것은 엄청났다. 약간의 과소비도 있었다. 낑낑대며 들고 간 물품을 냉동실, 냉장실, 보관장으로 배분 보관하는데, 문제의 대두유가 하나 더 있는 것이 아닌가! 계산원이 맞은 것이다. 아차! 정말 멘붕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딸과 다른 구역에서 고른 물건을 먼저 계산대에 옮겨놓고 이후 배달 박스를 구하고 경품대에서 판촉물을 받으면서 뒷마무리를 딸에게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딸이 고른 물품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정말 한심했다. 한라봉 한박스는 더 부끄러웠다. 꼼꼼하지 않음을 탓하면서 전화로 잘못을 인정했다.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해결방법을 물었더니 대두유 9천80원과 한라봉 한박스 2만4천800원을 송금하는 것이 편하시겠다고 응답했다. 그쪽에서도 화면을 보고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단다.

물론 365일 24시간 연중무휴 대형마트에서 고객전화를 신속하게 받지 않는 것, 환불취소 규정원칙의 (벽면)고지 및 준수, 돌발사건/사고에 대한 제도화된 규정 없음은 안타깝다. 아니 이렇게 안타깝다고 쓰는 것도 나의 한심한 자존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원처리 담당자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문자는 나의 성급한 분노를 반성하게 했다. 계산원의 잘못 일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나의 잘못일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멋쩍게 받았다가 다시 송금하여 먹게 된 우여곡절 한라봉은, 과연 어떤 맛일까? 분노, 짜증, 잘난 척, 자존심 등이 뒤섞인 멘붕의 씁쓸한 맛이 아닐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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