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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9.16 16:44:31
  • 최종수정2019.09.16 19:16:08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덩그러니 놓인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고 있다.

 '찻잔'의 노랫말처럼 너무도 조용히 공간을 지키고 있다. 말 없이 피어나는 수증기에 이끌려 코를 가까이 댔다. 온기에 담긴 향기가 그윽하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길 정문 앞에서 한판 뽑기를 했던 달고나가 떠올랐다.

 연탄난로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낡은 국자에 설탕을 녹인 뒤 나무젓가락 끝에 소다를 조금 찍어 넣으면 마술처럼 부풀어 올랐던 달고나의 단향이다.

 잔에서 코를 뗄 즈음엔 잘 익은 감귤을 깨문 것 같은 상큼함에 몸이 살짝 떨렸다.

 혀가 감지할 수 있는 단맛과 신맛을 향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커피의 향을 폐에 가두듯 깊게 호흡하면, 힘을 주고 그은 붓의 선처럼 진하고 강하게 뇌에 새겨진다.

 이 커피의 젖은 향(wet aroma)을 구성하는 주요한 2가지 정체성은 캐러멜(caramel)과 탄제린(tangerine)이다.

 여린 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스니핑(sniffing)이 유익하다.

 피로해진 후각세포를 공기로 일깨우기 위해서 킁킁거리며 향을 맡는 방식이다.

 생오이의 한 가운데를 뚝 꺾었을 때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식물체의 신선함(freshness)과 아몬드의 고소함(nutty), 갓 뽑은 순무에 묻은 싱싱한 흙내음(earthy)이 교차하는 그림이 비로소 그려진다.

 향미의 작은 면모들이 많이 감지될수록 복합미(complexity)가 우수해진다.

 커피에서 느껴지는 향미의 정체성이 많을 경우 "커피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고 묘사한다.

 향기가 허무하게 공기로 모두 사라지기 전에 커피를 입에 담아야 한다.

 커피를 한 스푼 가량 혀 위에 올려 놓겠다는 마음으로 머금고, 턱을 약간 쳐든 뒤 온 몸에 힘을 뺐다.

 커피가 혀의 양쪽으로 흘러내리며 어금니 안쪽의 면을 따라 길게 난 좁은 골을 따라 목으로 들어간다.

 이 통로는 마치 순차적으로 켜지는 터널의 조명처럼, 커피가 지나면서 차례로 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

 입안의 어둠을 밝히는 환한 느낌은 커피의 긍정적인 산미(acidity)에서 비롯된다.

 산미가 정도를 지나쳐 과도하거나 성격 자체가 과일이 아니라 식초처럼 날카롭다면 그것은 맛이 아니라 단지 관능을 괴롭히는 자극일 뿐이다.

 혀에 커피가 닿으면, 이렇게 생각이 복잡해진다.

 뇌의 입장에서 보면, 후각세포에서 보내는 향기신호와 미각세포의 신경을 타고 전해지는 맛 신호를 종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각과 미각이 감지한 정보를 아우른 이러한 커피의 속성이 플레이버(flavor)이다.

 좋은 커피로 평가 받기 위해 플레이버가 일단 풍성해야(rich) 한다.

 맛과 향이 입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공간을 가득 채울수록 품질이 좋은 것이 분명하다.

 향미적으로 입 안을 일깨워주는 면적이 넓을수록 플레이버가 풍성하다고 말한다.

 특정 향이나 맛이 강하다고 좋은 게 결코 아니다. 강하게 누르기만 한 건반들의 소리가 소음이 되는 것과 같다. 화음을 이루듯 여러 속성들이 균형(balance)을 이뤄야 한다.

 긍정적인 향미의 속성들이 서로 제압하지 않아 미세한 면모들마저 각자 잘 드러날 때 커피는 최고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섬세함(delicate)이 균형을 이룬 커피에게 보내는 찬사가 우아함(elega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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