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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

수필가

 태양의 열기를 욕심껏 불사르는 듯한 무더운 여름날이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해 보는 순간 '숲속 인문학 카페'를 소개한다는 카톡이 왔다. 강의주제는 '한국 근 현대미술 감상(나혜석 이후의 여성화가들)'이다. 나혜석이란 인물은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여성이라는 점과 미술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호기심이 생겼다. 갈까 말까 망설이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강좌를 들으러 가자는 전화가 와서 동행하기로 했다.

 노을이 짙어가는 여름날 오후 구 도지사 관사였던 충북문화관을 향해 달렸다. 서산마루에 걸린 노을빛이 환하게 드리운 한적한 숲 사이로 난 길을 걷다보니 무더움을 품어 안은 듯한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닿는다. 한적한 분위기가 어디쯤엔가 고즈넉한 산사라도 있을 것만 같은 고요함이 어린다. 정원 곳곳에 전시된 멋진 조각 작품들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마치 방문객을 반겨주는 것만 같다.

 그 안쪽에는 작은 듯 아담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일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인줄 알았는데 일식과 고전적인 서구 건축양식이 혼합된 '일양절충식주택'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무엇이든지 직접 보고 듣고 체험을 통해서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깨달았다. 이곳에 와서 보기 드문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큰 즐거움이다.

 문화관으로 들어서니 등록부에 이름과 폰 번호를 적으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장부에 적고 돌아서니 정갈하게 차려진 음료와 다과를 시식 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인이 내 손에 숫자가 적힌 쪽지를 주며 강의가 끝난 후에 뽑히면 선물을 받게 되니 잘 두라고 했다. '설마 나에게 행운이 올까'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에 소중히 넣었다.

 시작 전이라 실내를 돌아보니 충북을 대표한 문인들이 문학 활동을 했던 현황판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국권침탈과 문화통치에도 굽히지 않고 활동했던 문학가들의 업적을 보고 충북이 낳은 12인의 문학인들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마치 그들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역사적인 면은 물론 미술작품 전시와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짧은 시간이지만 흥미롭게 작품 감상에 젖어 보았다.

 미술 평론가인 최열강사님은 생소하고 추상적인 어려운 분야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 흥미있게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 화가이자 여성 작가로 3·1운동 때 활동했던 독립 운동가로 나혜석은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는 여성으로서 '사람이 되고저'를 추구했다고 한다.

 이미 100년 전에 여자도 사람이라는 것,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 사람의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것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냈던 선각자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였고 그가 품었던 야무진 뜻을 찬란히 꽃피우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분이다.

 그의 또 다른 삶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시대의 여성 선구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는 문학을 하는 신여성으로만 어설프게 알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시대에 흔하지 않게 세계일주를 하며 자기의 이상향을 향해 그 모든 것을 실천하고자 몸부림 친 그가 아닌가. 꿈 많던 그의 삶은 자유로운 연애와 결혼과 이혼을 하면서 깊은 상처와 충격으로 비극적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애처롭기만 하다. 아무튼 아름다운 노후를 지냈으면 좋았으련만 무연고자로 최후를 마감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경품 추첨이 시작되었다. 무심코 앉아있는데 지인이 나를 툭 치며 17번 나가라고 한다. 깜짝 놀라 번호표를 꺼내보니 호명된 번호가 맞았다. 그 순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들뜬 기분을 억제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이런 행운의 기회가 오다니'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사선생님 앞으로 다가갔다.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하라는 말에 '나혜석 이후의 여성화가들'이란 책이 눈에 들어와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저자의 사인을 받는 순간 황홀한 감동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책은 그 어느 것보다 좋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최열 강사님의 명 강의에 취해보고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아 팔월의 태양만큼이나 뜨겁고 행복 가득한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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