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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희

수필가

 집근처 아동센터에서 초등학생들 공부를 봐준 적이 있다. 근무하는 동안 한 아이에게 유난히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갔다. 눈깔사탕 하나 받은 것도 없는데 개구진 녀석이 무작정 예뻤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기지 못한다더니 제게 기우는 내 마음을 눈치 챈 모양이다. 나를 보면 뛰어와 툭 치고 달아났다.

 뛰어가는 아이 뒤로 어린 내가 줄레줄레 따라간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고전 읽기 반'에 들어갈 사람을 뽑는다는 선생님 말씀에 손을 번쩍 들었다.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선생님은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A를 불렀다. 선생님의 서늘한 눈빛이 종일 마음에 걸렸다. 며칠 후, 복도에서 A와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었다. 선생님은 "A야. 넌 왜 쟤 같은 애랑 노냐?"며 한마디 하셨다. 아무리 철이 없다 해도 '쟤 같다'는 말이 가난한 집 애라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선생님의 차별을 편애라는 말로 바꿔도 어색치 않으리. 또 편애와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점에서 한 뿌리, 한 형제라 말할 수 있으리. 선생님은 어떤 색안경을 끼고 나를 바라봤을까. 가난은 죄다. 가난한 사람은 모자라다. 그도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어린 제자에게 모진 말을 한 선생님의 마음속에 혹시 삭히지 못한 상처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상처가 편견으로 변형된 건 아니었을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편견을 갖는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부터 피부색이 다른 타민족에 대한 부정적 생각까지. 편견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다양하다. 편견은 대부분 개인의 한정적 경험이나 타인에게 들은 지식을 검증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의적이고 비논리적이다. 더 답답한 것은 자기만의 확고한 생각으로 쌓아 올린 편견의 성채가 웬만한 역풍과 저항으론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편애, 편견, 편파 등 치우칠 편(偏)자가 들어 있는 말은 대개 부정적이다. 한쪽으로 쏠린다는 것은 부당하거나 옳지 않다는 생각을 은연 중 갖고 있어서 그럴 테다. 사람 일이든 정치판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한쪽으로 기울면 균형을 잃고 공정성을 잃는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은 집착이 되고 편향된 정치는 갈등의 씨앗이 된다. 편파적인 언론은 또 어떤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불공평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편을 좋아한다. 이때 편(便)은 비슷한 취향을 뜻하는 코드를 말함이다. 어떤 모임에서든 코드가 맞는 한 사람만 있으면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낯가림이 심한 내게 '편'은 일종의 보호색이자 가림막이다. 동색의 무리 안에 있으면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갈 수도 있고, 평상시에는 하지 않던 너스레도 뻔뻔하게 떨 수 있다. 어쩌면 나의 '편 찾기'도 한 패거리끼리 스크럼을 짠다는 점에서 편애의 아류가 아닐까, 불쑥 드는 생각이다.

 사실 편애의 수혜자는 사랑의 온도에 민감하지 않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인정에 허기진 나 같은 사람은 무심한 말투, 찰나적 시선에도 한기를 느낀다. 여차여차한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편애를 당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당했다'는 말에 빨간 줄을 좍좍 그으며 눈 흘겼던 내가 이제 편애를 한다니. 이중적인 나의 태도가 부끄럽기도 하고 부적 인격을 드러내는 것 같아 편애라는 말에서 실은 자유롭지 못했다.

 우연히 책방에서 보석 같은 글을 만났다. 평소 존경하던 작가의 "나는 박애보다 편애를 좋아한다."는 글이 모래 속의 사금처럼 반짝 눈에 띄었다. 앞뒤 맥락이야 다를지라도 선생의 솔직한 고백은 놀랍고도 신선했다. 누가 알기라도 할까 봐 은밀하게 처신하는 나에 비하면 얼마나 당당한가. 그 짧은 문구가 나의 편애를 허(許)한다는 증서라도 되는 양 그날 이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선생님, 시간 있어요?" 가방을 챙기는 내게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깜찍한 데이트 신청에 새실새실 웃음이 나왔지만 마음 한쪽이 뭉클했다. 제 편이라는 순전한 믿음으로 늙은 선생을 붙잡은 게 아닌가. 그동안 내가 저를 편애(偏愛)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녀석이 나를 편애(便愛)한 거였다.

 편애면 어떻고 편애면 어떠랴. 사랑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인 것을. 나는 앞으로도 편애를 편애할 것이다. 물론 숨기지 않고 당당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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