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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 길, 이라는 가거라 삼팔선의 노래 마지막은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 바친다」이다

그런 38선을 그해 10월1일 국군이 용감하게 깨뜨렸다.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 바친다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비장하고 장렬하게 죽어갔다. 유엔에서는 「38선 돌파는 또 다른 전쟁이다.」 「아니다 깨뜨리지 않으면 재 침략의 기회를 주고 분단을 장기화 하는 것이다」하고 각기 다름 의견들이 다투다가 9월 29일 총회에서 「38선을 돌파해야 한다.」는 결의가 통가 되었다. 이승만은 「이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의 통일이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렇게 국군은 38선을 냅다 돌파하고 파죽지세로 텅 빈 북녘 땅을 질주했다. 유엔은 10월 8일 38선을 넘어 역시 무인지경인 북한을 휩쓸었다.

10월11일 국군은 원산을 진격하고, 19일은 평양 입성, 26일에는 압록 강변 초산에 가서 압록 강변에 태극기를 꽂고 대한독립 만세를 목 터지게 불렀다. 북한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간이 콩알만 했다.

그때 맥아더는 10월 15일 태평양 웨이크 섬에서 투루먼과 화담을 갖고 많은 기자들 앞에서 「한국전쟁은 추수감사절(11월24일)쯤에 끝나고 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돌아간다. 중공군이 파견한데도 6만명 쯤에 불과하고 그들은 탱크도 대포도 없는 취약한 병력이다」고 말했다. 이 뉴스는 금방 전 세계에 전파 되었고 아들을 한국전에 보낸 부모들은 「맥아더는 영웅이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판이었다. 당장 10월19일 중공군 20만이 압록강을 넘어 만포진에 나타나 산속에 깊이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잇달아 계속 60만의 대병력을 몇 차례나 거듭하여 도합 230만을 투입시켰다는 기록도 있을 만큼 엄청남 인해전술로 전선을 온통 뒤덮었다. 중공군은 각자 총알 8발, 수류탄 3개, 4일분의 식량이 전부일 만큼 원시적인 빈약한 군대였는데도 한밤중 괭가리, 나팔, 피리 소리를 한꺼번에 크게 소리 내어 온산이 뒤흔들려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10월25일부터 53년 7월19일까지 제1차부터 7차까지 원시적인 인해전술로 공격 해왔기 때문이다.

1차에서는 유엔군이 청천강 이남으로 후퇴하게 만들었고 2차에는 영하 35도의 혹한 속에서 장진호 전투 등을 통해 38선까지 밀렸다. 그때 저 유명한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찬 흥남부두에 ....」라는 노래처럼 흥남 철수를 했다. 또 3차 공세중인 1951년1월7일 우리의 수도 서울을 두 번째나 적군에게 내주었다. 저 한 많은 「1.4 후퇴」였다. 그 후 4차는 국군과 유엔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중공군은 참패했고 5차 공세중인 3월5일 서울을 또 두 번째 탈환하여 대 역전극을 펼쳤다. 6차는 침략군을 38선 이북으로, 7차는 휴전선까지 쫓아내면서 100만명이 넘는 중공군을 사살했다. 따라서 북한군도 전멸 상태였다.

그때 미육군사관학교를 98.14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1등 졸업하여 신화를 남긴 맥아더는 왜 인천상륙작전 같은 하늘이 놀랄만한 빅카드를 내놓지 못했는가. 사실은 그 카드를 내놓았다 ⓵ 미 7함대를 서해안 깊숙이 이동시켜 육해공군이 손발을 맞추어 중공군을 단번에 봉쇄한다. ⓶ 중공의 군사시설과 기간산업을 공군과 해군의 공격으로 모조리 파괴 시킨다. ⓷ 타이완군을 유엔군으로 참전 시켜 본토에 상륙 시킨다. 그보다 더 엄청남 것은 핵을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옛날 읽은 신문에는 핵을 5개쯤 터뜨리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6.25때 유엔공군의 출격횟수가 8천번이었는데 그로인해 북한은 쑥대밭이 되었다. 인천상륙작전과 흥남철수 때 보인 해군의 엄청난 위력으로 침략군들은 공포에 떨지 않았는가. 그러나 트루먼이 그 빅카드를 허락하지 않아 무지막지한 재앙과 비극을 만든 천인공노할 침략군들은 그리하여 하늘을 대신한 징계를 하지 못한 채 「끝나지 않은 전쟁」이 69년을 넘어가고 있다. 오호통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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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