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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시인 이육사는 7월을 노래 했으나 그해 7월은 우리의 강토가 피로 물들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서 신음을 토하며 죽어갔다. 그해 7월 남한의 90%를 점령당했다. 그와 전후하여 한강과 낙동강에서는 조국수호를 위한 두 방어선을 구축했다.

침략자들이 기습작전으로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하고도 3일동안 축제를 벌리면서 허송한 것은 그 사이 남로당 20만이 스스로 봉기하여 남한 전체를 차지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로당 등 좌익 33만은 자수하여 보도연맹이란 이름으로 이미 공산주의에서 탈퇴했다.

「이런 전쟁」에서 6.25는 한국과 미국의 초기 준비 미비未備, 침략자들의 오판誤判, 양자의 전쟁공포恐怖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다.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만 점령하면 남로당이 전국에서 일어나 손 안대고 코 푼다」는 오판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군은 그 3일 동안 금방 전투태세에 돌입하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김홍일이 사령관이 되어 아주 훌륭하게 잘 버티면서 시간을 벌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미국은 발 빠르게 북한이 침략군임을 유엔에 통보했고 유엔안보리에서는 28일 한국을 적극 지원한다고 결의했다. 그 이ㅤㅌㅡㅌ날 29일 맥아더는 수원 비행장에서 이승만과 채병덕을 만났다. 맥아더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 할 것이냐」 물었다. 「한국 젊은이들 200만을 뽑아 훈련 시켜 해결 하겠다」고 채병덕은 또 황당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하여 다음 날인 6월 30일 그는 해임되고 정일권이 취임했다. 만일 처음부터 이범석이 국방장관에 유임되고 김홍일을 참모총장에 임명했다면 그 전쟁은 막을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7월 5일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스미스 부대 400명이 최초로 한국전선, 오산 북쪽 죽미령에서 인민군과 맞닥뜨렸으나 200명 이상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했다. 그러나 이 전투는 국군 단독 작정에서 유엔과 연합작전의 첫 출발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8월1일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다. 4일에는 유엔군 총 병력 14만1천804명으로, 국군8만2천, 미군4만7천, 기타 1만2천8백4명이었다. 김일성은 8.15 전까지 부산을 점령하라 명령했다. 그렇게 남한은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던져졌다.

「단 한사람도 후퇴하지 못한다. 내가 후퇴하면 뒤에서 누구든 나를 쏴라」하고 백선엽은 비장하게 말했다. 그리하여 9월2일 북한군의 총공격이 있었음에도 그 철통같은 방어선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경천동지 할 만 한 빅카드를 내놓았다. 9월15일이 인천상륙작전이 그것이었다. 이른바 크로마이트계획이었다. 성공률이 5천분지1이라 할 정도의 지난한 작전으로 함정 261대, 총병력 7만5천명이 적진을 뚫고 상륙하는 대모험 엄청난 작전이기 때문이다. 그때 인천과 서울을 방어하는 인민군 2만여명의 병력을 낙동강 쪽으로 빼돌리는 오판을 김일성이 저질렀다. 중국 모택동이 인천상륙을 할 가능성이 있으니 튼튼한 방어를 하라고 했으나 그는 한사코 듣지 않았다.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인민군의 보급로를 끊고 9월 27일 한국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고 다음날 서울을 완전히 탈환했다. 그와 때맞추어 9월16일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공격을 개시하여 불과 보름만인 9월30일 38선에 이르렀다. 그때 인민군은 전멸 상태여서 2만5천 내지 3만명만이 허겁지겁 도망쳤다. 10월1일 국군은 38선을 넘었다.

김일성과 그 일당들이 민족에 대한 무도한 반역과 잔혹한 폭력과 악행으로 침략한지 98일만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엄청난 희생과 애통한 슬픔과 아픔을 당했는가. 민족을 반역한 역적들의 죄는 역사가 두고두고 준엄하게 물을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38선을 돌파하는 것은 첫째 북진통일의 문을 활짝여는 것, 둘째 그 죄를 징치하는 정의였다. 정의는 언제나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 심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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