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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

충북도시인협회 부회장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이다. 그 즈음 온 누리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바라던 때가 어제인데 벌써 기해년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

 며칠 전 경북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을 다녀온 일이 있다. 학창시절부터 시인을 안다하면서 광야에 서서 청포도 한 송이라도 맛보았으면 하는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40년 짧은 생애동안 독립운동으로 17번이나 감옥을 드나든 일제 강점기 최고의 저항시인임을 알게 됐을 때, 육사가 태어난 안동 원촌마을에라도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마침 문학회에서 문학기행이 있어 '반드시 일제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불행한 역사를 뒤엎겠다'는 시인의 애절하면서도 투철한 애국정신을 사무치게 공감하는 순간을 맛봤다. 수인번호 264로 필명을 삼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시 한 줄까지 바친 사람. 그가 만일 이 시대 후손들에게 편지를 보내온다면 어떤 당부일까? 어떻게 되찾은 조국인데 저마다 이기주의로 치달아 나라가 만신창이가 될 때 은근 속이 상하고 나 자신부터 반성할 때가 많다. 극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해내기 위한 시인의 절체절명의 발걸음이 모란꽃잎 핏빛처럼 강하게 스며오고 있다.

 다음날 우체통을 여니 하얀 봉투에 담긴 서적 한권이 꽂혀 있다. 설레는 맘으로 살피니 김효동 제8시집 '무채색의 하소연'이라는 진한 표제가 보인다.

 얼마 전부터 허리가 다소 불편해 즐기던 테니스도 못하시고 만나 뵐 수 없어, 병문안을 가려했는데 시집을 받고 보니 가슴이 철렁한다. 교육자로서도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시작품 또한 명시가 많아 문학상도 많이 받으셨다. 무엇보다 충북 모든 문인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감이 확실한 분이다.

 연세도 85세 높으신데 겸손한 인사말이 메마른 마음에 사랑의 선을 여럿 긋게 한다.

 "이제 이 시집이 마지막이 될 것도 같고 낡은 심정과 병든 몸으로 고생스럽 기도 하지만 그저 버텨나가는 실낱같은 오기로 하얀 머리카락 날리면서 남은 여생을 속살까지 차분하고 여유롭게 보내려 합니다. 끝으로 그동안 따스한 도움과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주시면서 이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가슴깊이 고마움을 드리면서 정중히 인사 올립니다."

 소리 없이 태어난 꽃/ 비바람세월 탓하지만/지는 꽃은 향기롭게 소천한다

 사랑의 꽃빛 당신 곁으로/ 숨 고르면서 /잠시 쉬었다 가자

 사랑하는 당신 옆에서/ 꽃 한송이 피우고 싶다('어느 날 꽃이피면' 중에서 일부)

 지난 2016년 창립해 따듯한 발걸음을 내딛어가며 활성화되고 있는 충북도시인협회 고문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시인의 밝고 힘찬 목소리에 유월이 다하기 전 또 한 송이의 모란꽃으로 피어나시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해마다 해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 송이 나의 모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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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