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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팀장

오월이다. 꽃들이 빠르게 피고 진다. 어디든 지천으로 꽃이 핀다. 그중에 나는 하얀 이팝꽃이 제일 좋다. 이 꽃을 보면 우리네 어머니 젖무덤 같은 이야기가 나를 아리게 한다. 배가 고파 고봉으로 쌓아올린 이팝나무에 핀 꽃이 무겁다. 이맘때면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아우성으로 진다. 광주의 하얀 기억들이 살 떨리게 나에게 난사한다. 오월은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한다.

광주 5.18이 일어나던 해 나는 재수를 하고 있었다. 나만 불행하다는 자괴감 속에 살아왔다. 그렇게 봄날이 지던 5월 어느 날 재수학원이 있던 대교 인근에서 수천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밀려들었고 그날의 수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외치는 구호와 스크럼에 나는 함께 할 수 없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두려웠다. 그리고 그 해 가을 광주학살에 관한 비디오를 보게 된다. 차마 쳐다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내내 절망의 울음을 울었다. 80년 한 해를 그렇게 죄진 사람처럼 보냈다. 그 날 이후 광주는 나에게 두려운 아픔의 이름이자 미안함 그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목숨 걸고 싸웠던 젊은 날들이 있다. 그 어떤 두려움보다 진실을 찾고 탄압받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던 날들이 있다. 이제껏 세상 살면서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고 여러 번 맹세 했었다. 그리고 그 여러 날들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간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것은 내 삶이었고 나를 지탱해주는 푯대였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나는 지금 정의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새삼 묻는다. 혼돈스럽게도 독재를 하고 나를 빨갱이로 몰았던 자들의 입에서 지금 독재타도가 외쳐지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80년대의 그 엄혹한 시기를 만들고 촛불에 쫓겨난 자들이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이야기 한다. 80년 민주화의 봄이 왔을 때 군부독재에 무릎 꿇은 장본인도 자신의 훼절을 변명한다.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직면하며 많이 어지럽다.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정의는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리와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정의라 생각했건만 많이 혼돈스럽다. 국민들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고문하고 동지를 저버린 그들의 이런 해괴한 행위가 정당화되는 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과연 그것이 정의인 것인가. 그 정의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집단의 이해관계 속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낯설다. 결국 그 정의는 자기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정의이고 진리인 것이다. 이 이기적인 정의를 신앙처럼 받들어온 내가 참으로 어리석다.

매년 오월만 되면 가슴에 묻은 두려움을 꺼내 나를 비추곤 한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참으로 무던히도 버티며 살아왔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잦아진다. 일상에서 나를 올곧이 바라보고 싶다. 그래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아직 고단한 날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돌이켜 생각해본다. 그래.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목숨 건 싸움을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훼손된 민주주의의 양심을 찾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월, 이 환장할 봄날에 그대는 무엇하고 있는가.

꽃은 저절로 피어나지 않는다. 꽃은 인고의 고통이 머물러 피어나는 것이다. 하물며 지는 꽃은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하얀 꽃잎이 진다. 오월 마른 벌판에 따뜻한 눈물 한 송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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