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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시인

어린이 날이다. 나는 종일 텔레비전을 보다가 낮잠을 자며 하루를 보냈다. 어린이 공원에 놀러가자고 보채는 아이도 없고 외식을 시켜 달라는 아기도 없다. 거리에 나가봐도 조용하다. 손자가 없는 나는 요즘 아이들이 뭐를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은 몇 푼의 돈을 쥐고 문방구로 달려가 장난감을 사거나 문방구 구석에서 오락을 하곤 했던 것 같다. 우리 동네는 문방구점도 사라진 터이니 더더욱 아이들이 보이질 않는다.

이제는 서른이 넘은 두 아들은 어린이날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지도 못했고 장난감을 사러 손잡고 나가보지도 못했다. 맛난 것을 먹으러 나가는 대신 늘 배달 음식을 시켜주고 일하러 나갔다. 조금만 아이들에게 마음을 기울였으면 그런 시간쯤은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올해는 3일의 연휴라서 해외로 섬으로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날 전날은 아버지 제삿날이다. 가족들은 어린이날을 축제처럼 즐기기 이전에 아버지를 추모하는 조용하고 엄숙한 시간을 거쳐야한다. 제사가 끝나기 무섭게 형제들은 뿔뿔이 내일 있을 어린이날을 즐기러 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다. 아버지 가신지 20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 눈물을 흘리지도 무겁지도 않은 제사가 되었다. 시간도 절기도 변하는 것인지 아버지 가시기 전날 함께 보았던 벚꽃을 요즘은 보기 어려워졌다. 20일이나 먼저 피었다 진다.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 탓인가 꽃도 서둘러 피었다가 지고 만다.

우리는 세 가지 행사를 하루에 몰아서 하는 편이다. 매년 5월 4일 날 아버지 제사와 어린이날 행사와 어버이날이 동시에 행해진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어린 아이들은 할머니 이하 삼촌 고모들에게 어린이날 선물과 용돈을 받고 입이 함박 만하게 벌어진다. 아이들이 물러나면 부모님께 어버이날선물을 드린다. 어머니가 몸이 불편해지신 이후에는 옷을 사드리는 적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있는 옷도 다 입지 못하고 간다고 사오지 말라고 하신다. 그냥 봉투를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편이다.

모레면 어버이날이다. 아들이 만들어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는 아무도 색종이 꽃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중국산 카네이션 바구니를 주고 가더니 그도 돈 봉투로 바뀌었다가 전화 한통화로 짧은 안부전화가 되었다가 차츰 그도 사라지고 마는 추세이다.

아이들이 왔다가지 않는 때면 공연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린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그다지 화려하지만은 않다. 유치원에 들어가 막 글씨를 배우고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써온 색연필로 쓴 편지. '엄마 사랑해요'라는 글씨는 아직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데 집 떠난 아이들만이 돌아오지 않는 5월이다.

무언가 화려할수록 소외된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은 더 커진다. 내가 위아래를 다 챙겨야할 때는 고단하고 힘이 들었지만 뿌듯하고 행복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 나이 들어 어른이 되고 보니 멍하니 앉아 아이들이 찾아와주기 만을 기다려야 한다. 동네 노인들이 노인정 앞마당 툇마루에 앉아 있다. 누군가 지나가면 대여섯 노인의 고개가 동시에 움직인다. 햇살이 따스하게 퍼지는데 노인들의 봄은 아직 한기가 느껴진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쓸쓸한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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