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9.05.07 17:02:02
  • 최종수정2019.05.07 19:36:02

신승후

충북조달청 물자구매과장

모르면 두렵고 알면 사랑인가 보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종말을 뜻하지 않는다. 흙으로 지은 육체와, 하나님의 영으로 된 인간의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죽음으로 인식한다.

불교에서는 자신이 지어 온 업으로 인해 끊임 없는 태어남과 죽음이 이어진 삶을 산다고 한다. 이처럼 삶을 되풀이하는 존재자를 중생(衆生)이라고 한다.

죽음이 곧 끝은 아니라는 의미다.

지난달 어느 봄날, 33세 꽃다운 청춘에 다섯 남매만 남겨놓고 저 세상으로 가신 나의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만져 보았다.

내나이 8살, 초등학교 1학년때 콧수건을 가슴에 채워주시고 입학 시켜주셨던 어머니가 그해 8월 어린 자녀들만 남겨두고 유명을 달리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누워계시다가 며칠후에 다시 오실것만 같았다. 내내 기다렸으나 영영 오시지 않았다.

소풍가던날 곱게 단장하고 바리바리 먹거리를 준비해온 친구들의 어머니.

운동회 하던날 코스모스 배경으로 사진찍어 주던 친구들의 어머니.

그건 나에게 하나의 희망이었다. 부러웠어도 보고 싶었어도 그리움에 더욱 목이 메었다. 사계절이 바뀔때마다 그분의 손길은 더욱 그리웠었다.

어머니 묘소가 위치한 곳으로 도로가 개설돼 이장을 해야했다. 이장에 대한 부담과 그리움으로 기대반 걱정반 이었다.

이제 내 나이 58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잊은지 오래됐다.

'개장하면 펑펑 울겠지' 개장을 위해 포크레인의 첫 삽이 묘봉을 깍아 내릴때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묘소의 봉우리가 낮아지면서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될 때 격한 흥분이 일었다.

아! 나의 어머니.

제례와 예배를 드리다가 눈물이 바다가 되었다.

50년 세월동안 부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황금빛 유골을 통해 다시 만난 절정이었을 거다.

어머니의 유골들을 머리부터 조심스레 만져 보면서 두려움이 가시고 33세의 꽃다운 어머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다시 나타난 어머니 유골 속에 아름다운 모습이 환하게 비춰진다.

고이고이 화장하여 백옥같은 유골을 정성스레 모셔 드렸다.

'이제는 훨훨 날아서 50년 동안 하지 못한 삶들을 하늘에서 보내소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날밤 내 마음속은 온통 어머니로 가득찼다.

죽음은 암흑처럼 두려움과 아픔인 줄 알았다. 환한 어머니의 유골을 만지면서 슬픔과 아쉬움보단 사랑이 느껴졌다.

지금은 편안하다 어머니도 나도.

올해 89세인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사신만큼 더 사셨으면 한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