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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4.25 17:26:26
  • 최종수정2019.04.25 17:26:26

류정현

엄정면

약 2년 전 추석 때의 일이다. 차례를 지내고 마당을 걷고 있는데 아침햇살이 서쪽의 오래된 부엌문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오른쪽에는 어릴 적 태엽을 감으며 놀던 괘종시계가 있었고 녹색 고무호스가 그 위에 걸쳐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부엌문 왼쪽에는 연노란 우비 두세 벌이 모서리에 걸려 있었고 그 앞의 조그만 수돗가에는 갈색의 고무 양동이와 파란 물뿌리개가 엎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밝게 빛나는 황토색 부엌문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널린 사물들이 시골의 번잡한 풍경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리면 멋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충주로 돌아와 아침에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확대해가며 보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 속 물건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게 아니었다.

부엌 앞 수돗가는 부모님이 들에 나가기 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곳이자 해 질 녘 손발을 씻으며 마무리하는 공간이었고, 괘종시계가 마당을 향해 걸려있던 이유는 농사철에 바삐 움직이며 시간을 바로 확인하기 위해서, 호스가 괘종시계에 걸쳐 있었던 이유는 안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든 물건들이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사진 찍기와 SNS 활동이 일상이 된 세상이다.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자신의 SNS에 올려 지인들과 공유하는 생활이 보편화됐다.

다만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어서 그런지 사진은 물론 그 안에 담긴 풍경의 희소성이 떨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부엌문 사진을 보며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단순히 보기 좋아서, 색감이 예뻐서, 시골다워서 카메라에 담기 급급해 풍경 속 사물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에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엄정면에 근무하면서 그런 생각에 다시금 젖게 된다. 지금 목계나루터는 4월 27일부터 이틀간 열릴 목계별신제 준비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작년 장마로 불어난 강물에 쓸려간 섶다리가 다시 세워지고, 나무기둥과 볏짚으로 만든 행사장 부스가 모습을 갖추었으며 강물 위에 길게 이어진 뗏목이 운치를 더한다.

짚으로 꼰 어마어마한 크기의 줄다리기 줄도 완성되어 시합 날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고 꽁꽁 언 겨울을 이겨낸 유채씨앗은 노란 꽃잎을 틔웠다.

그 모든 일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풍경에도 기성복과 맞춤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냥 유채꽃이 예뻐서, 섶다리와 뗏목이 목가적으로 보여 사진을 찍는 건 기성복과 같은 게 아닐지.

노란 꽃물결을 위해 지난 가을 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며 흘린 땀을 먹고 자란 유채이기 때문에, 황포돛배가 가득했던 그 옛날 목계나루의 영광을 그리며 섶다리와 뗏목을 만든 주민들의 마음이 느껴져 카메라를 들었을 때 비로소 맞춤복처럼 진정한 풍경으로 다가오는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이번 목계별신제가 행사장을 찾는 수많은 분들에게 과연 어떤 풍경으로 다가갈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오는 유채 줄기처럼 나의 기대도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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