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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바람 한 자락이 화단을 지나다 뾰족 내민 목련나무 꽃봉오리에 꽂혔다. 봄날 화단에 인연 만들기 소동이 벌어졌다. 바람이 화단을 맴돌며 구애를 한다. 나와 인연을 맺자, 꼭 다문 입술 기필코 열고야 말리. 하며 나무를 후려 댔다. 그런데 어쩌나. 여린 처녀 입술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없으니. 열리기는커녕 더욱 앙 다물고 있으니. 열 번 후리고 흔들면 열리겠지 하고 도전해보지만 번번이 미끄러지곤 한다.

그런데 바람이 달라졌다. 딱새 한 마리가 소곤대더니만 비법을 알려주기라도 한 겔까. 물을 찾는 뿌리를 땅속으로 감춘 채 사는 나무처럼, 아무기대도 하지 않는 것처럼 속을 숨기고 있다. 숨긴다 해서 관심이 사라질까마는 가만히 쓰다듬기만 한다. 그랬더니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자 못내 참지 못하고 터지는 그 파열음이라니…. 그 밤에 목련나무는 일제히 하얀 꽃등불을 켰다. 세상이 환하다.

돌아보면 내 사랑도 봄날 꽃송이 피우듯 했다. 통상의 사람들이라면 그가 바람이고 내가 꽃봉오리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내가 급한 바람이었다면 그는 앙다문 꽃이었다. 살면서 그만큼 당기는 유혹이 또 있을까. 처음 그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는 내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그와의 인연을 갈망하며 그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그는 상아궁에서 나오는 향가처럼 나를 취하게만 할 뿐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허술하고 급하게 움직이는 나와 다르게 그는 주도면밀했다. 나와 다름에 끌렸든, 나를 자신에게로 모으게 하는 마력에 끌렸든, 내가 먼저 다가가 시작한 인연 만들기로 인해 같이 늙어가고 있다.

수년 전, 우리부부는 마흔아홉 살 노총각과 마흔네 살 노처녀 인연 만들기 작전에 돌입한 적이 있다. 경제력을 갖춘 사람 좋은 노총각이 남편 직장에 있었고, 음악을 전공한 아리따운 순수노처녀가 내 주변에 있었다. 언뜻 봐도 잘 어울려서 만나게 해주었더니 도무지 진전이 없는 거다. 둘 중 하나가 바람을 해야 하는데 둘 다 꽃봉오리만 하고 있다. 세상을 알 만한 나이를 먹었음에도 총각은 여자마음을 모으는 방법을 모르고, 아가씨는 아직도 백마 탄 왕자에게 납치당하는 꿈을 꾸는 철부지였다. 총각은 남편이 맡고, 아가씨는 내가 설득하며 인연 만들기에 들어갔다.

남편권유에 총각이 몇 번 데이트신청을 했으나 아가씨가 요지부동이다. 내가 아가씨와 대화를 해보았으나 고개만 갸웃한다. 문제가 무얼까. 나이만 먹었지 십팔 세 소녀인 아가씨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랬더니 두 가지 묘안이 보였다. 하나는 근면 성실하나 털털한 노총각의 외모를 꾸미는 것이고, 하나는 그에게 있는 경제력을 활용해보자는 거였다. 남편이 총각에게 내 묘안을 말했더니, 자기는 자신의 진면모를 알아보는 여자를 찾는다고 하더란다. 남편은 물정모르는 소리 말라며 피부과로 데리고 가서 얼굴을 깨끗하게 했다. 그리고 선배에게 주는 셈치고 천만 원만 써보라고 설득했단다. 깨끗한 외모와 명품에 안 넘어갈 여자가 어디 있나. 얼마 뒤, 두 사람이 청첩장을 들고 왔다. "그 손 좀 놓지요·" 우리거실에서 차 마시는데도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너무 늦게 만나서 손을 놓기조차 아까워 잡고 있을 거예요." 하고 아가씨가 말했다. 몇 년 후, 콩콩 걸음마하는 아들과 노는 아이아빠를 만났다. "그 댁은 아기 신발도 명품이라면서요·" 하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그런 말씀 마시라, 늦게 얻은 아들 신발까지도 바자회 표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인연은 정靜과 동動이 서로에게 끌리는 것처럼, 산 넘고 들판을 달려온 자유로운 날개를 가진 바람 한 자락이 목련꽃망울에게 꽂히는 것처럼 우연히 시작된다. 그렇게 유혹을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여 호수에 낙엽이 떠다니듯 하나의 너울로 물들어가며 관계를 만들고 열매를 만들어가게 된다. 누가 먼저가면 어떤가. 간절함이 없었다면 어찌 다가온 이를 두 팔 벌려 안았겠는가. 그는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로 서있는 나무처럼 서있었을 뿐이다. 우연을 인연으로, 인연과 필연을 넘어 섭리攝理를 이루어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꽃을 보는 일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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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황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장 인터뷰

[충북일보]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메카인 충북 오송에 둥지를 튼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은 지난 10년간 산업단지 기업지원과 R&D,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토대로 제2의 도약을 앞둔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 구상하는 미래를 정재황(54) 원장을 통해 들어봤다. 지난 2월 취임한 정 원장은 충북대 수의학 석사와 박사 출신으로 한국화학시험연구원 선임연구원, 충북도립대 기획협력처장을 역임했고, 현재 바이오국제협력연구소장, 충북도립대 바이오생명의약과 교수로 재직하는 등 충북의 대표적인 바이오 분야 전문가다. -먼저 바이오융합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창립 10주년 소감을 말씀해 달라.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하 바이오융합원)은 산업단지 기업지원과 R&D, 인력양성이융합된 산학협력 수행을 위해 2012년 6월에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산·학·연 간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과 기업성장 지원, 현장 맞춤형 전문인력 양성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충북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부 재정지원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