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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부터 다음 해인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까지 그러니까 날짜수로 152일 동안이 안중근安重根(1879-1910) 최후의 시간이었다.

그날 하얼빈 역에는 러시아군,의장대, 군악대, 영사, 관헌들, 청군과 일본 거류민단 대표들, 각국 영사관들로 초만원인 가운데 특별열차가 멎자 이등박문이 내려 러시아 대장이며 재미 대신인 코크체프와 나란히 군악대가 울리는 가운데 사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10보 앞에 쯤 이르자 안중근은 부라우닝식 권총을 뽑아들고 이등을 겨냥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이등의 얼굴을 알지 못하여 「얼굴이 누렇고 흰수염을 한 작은 늙은이가 노적老賊 이등이다」 생각되어 그의 가슴에 세발을 명중시키고 그를 따르는 비슷하게 생긴 자들에게도 또 세발을 쏘아 네 사람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피투성이가 된 이등을 차에 싣고 대련으로 옮겼으나 30분 후 이등은 숨이 끊겼다. (그때 6발 째 쏜 총알을 맞고 쓰러진 남만철도 이사 다나까는 아주 훗날 죽을 무렵에 그 순간을 정직하고 대담하게 털어놨다. 나는 그때 피 흘리며 쓰러진 채 안중근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그 늠름하고 씩씩한 모습은 마치 신과 같았다. 신 가운데서도 어두운 신이 아니라 빛나는 밝은 신과 같았다라고)

안중근은 그곳에서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코레아 후라」한국 만세라는 뜻이다 . 많은 세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만국공통어라 할 수 있는 라틴어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것이었다. 혼비백산하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러시아 헌병(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관할이었다)들은 안중근이 도망칠 것을 막느라 다급하게 체포하자 그는 두 번째 외쳤다.

「이놈들아 내가 도망칠 줄 아느냐 그랬다면 이 죽음의 땅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러시아 헌병 파출소에 끌고 갔고 9시간 뒤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에 인계되고 지하실에 구금되었다.

10월 30일 여순에서 달려 온 미조구치 일본 검찰관의 심문을 받았다. 안중근은 이등을 죽은 이유를 15가지로 당당하고 논리정연하게 피력했다. 「한국 황제를 폐위 시킨 죄, 을사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 시킨 죄, 정권을 강제로 뺏은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마구 학살한 죄, 한국 군대를 해산시킨 죄등의 죄를 징치한 것이다.」 그 말에 감동한 일본 검찰관과 변호사들도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아 무기로 합의 하는 중에 일본 본국에서 사형 집행을 명령했다

11월 11일 안중근을 하얼빈에서 여순감옥으로 이감되고 그곳에서 「안응칠 역사」를 ㅤㅆㅓㅅ고 이어 「동양평화론」을 쓰는 중 사형이 집행되어 중단되었다. 동양평화론은 현재 유럽의 「EU사상」과 상통한다는 학자도 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그의 드높은 인품과 뛰어난 애국심과 영웅다운 모습을 보고 존경한 나머지 그에게 요즘 말로 하면 수많은 일본인들이 싸인을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게 유명한 안중근의 명필을 받은 것이었다. 그들이 보낸 비단과 종이에 일본인들에게 써준 글씨가 200점이라 한다. 안중근의 좌우명인 위국헌신爲國獻身에다 군인본분軍人本分(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을 덧붙여 쓰기도 했다. 그로인해 안중근을 존경하고 스승으로 받든 경호원 치바 도이치에게 준 것을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 일생동안 그 글씨와 사진을 모셔 놓고 참배 드렸다 한다. 그가 죽자 부인도 딸도 계속 참배했다한다. 훗날 그것은 남산 안중근 박물관에 기증한 보물 1150-2호다.

안중근은 6차례나 재판을 받았다. 그때 한국변호사 안병찬 러시아 변호사 마하이로프 영국 변호사 더글러스 모두 일제가 거부했다. 그러나 안중근의 늠름함과 사자후를 토하는 것을 보고 더글러스는 「안중근은 뛰어난 영웅의 관을 쓰고 재판소를 나갔다」고 찬양하고 나는 온 천하를 다니며 그를 찬미하겠다고 말하고 영국에 가서도 신문에 크게 그 이야기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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