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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광혜원면 민원팀장

한겨울의 끝자락에 있던 지난 1월의 어느날, 한 분이 제적등본을 발급하기 위해 광혜원면 민원실을 방문했다.

늘상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낯익은 이름이 들려왔다.

조부인 '박도철'과 그의 모친이 나오는 제적등본을 발급해 달라고 했다. 누구지· 곰곰이 생각하니 얼마 전 월성마을 노인회장이자 향토사학자인 오인근 씨가 사무실로 찾아와 '광혜원 4•3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인물 중 거론했던 이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도철'과 그의 모친의 제적부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아들이 호주로 돼 있는 제적부의 전호주란에 기재되어 있는 '박도철(朴道哲)'이라는 성명과 '대정8년(1919) 4월 3일 전호주 박도철 사망으로 인하여 호주상속'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그 해 1919년 4월 3일, 진천에서도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당시 '만승면'이던 '광혜원면'에서도 격렬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독립운동가 윤병한(1873~1932)의 지휘하에 1919년 4월 2일 식수 작업 중인 광혜원면 회죽리 산중에서 정운화, 남계홍, 백선옥, 이영호, 유치선 등 200여명이 태극기를 만들어 거사를 준비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면서 광혜원 장터로 시위행진을 하고, 만승면사무소에 가서는 "너희들은 한국 사람이니 같이 시위에 참가하여 만세를 부르라" 외쳤다.

이에 응하지 않자 면사무소에 투석하고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인근에 건설 중이던 헌병주재소에 가서는 건축자재와 벽을 파손시키는 등 격렬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인 3일 광혜원 장날, 이들은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2천여명에 이르는 군중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가 울려 퍼지던 그 때, 일본 헌병들이 운집한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고, 10여명이 현장에서 죽고, 많은 부상자를 내며 강제 해산됐다. 이후 윤병한을 비롯한 시위 주동자들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박도철' 모자의 비극이 일어난다. 국가기록원의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에는 박도철(朴道喆)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순국일시는 3월 3일로 나와 있는데, 이는 음력 날짜인 것으로 보인다.

순국장소는 '만승면 광혜원리'로, 순국상황은 '경찰서 습격 기도 중 피살'로 적혀 있다. '진천군지(1974)'에서 그 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일본 헌병이 쏜 총에 맞아 '박치선(박도철)'이 피살되자 이를 목도한 어머니가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이놈들아~ 내 아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울부짖으며 항거하자 일본 헌병은 어머니마저 총을 쏘아 죽였다. '모자가 같은 자리에 쓰러져 유혈이 낭자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박도철 씨의 손자인 박영섭 씨에게 왜 그동안 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고, 이제 와서 하는가 하고 물었다. 기미년 4.3만세운동 이후 박씨 일가는 광혜원에서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 족보를 불 태워 버리고 음성으로 상주로 고향을 떠나 살았고,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았노라고. 한 때는 유공자 신청을 하려 했으나 증빙자료를 찾을 방법이 없었고, 증언하실 분들도 이미 다 돌아가신 상황이라 유공자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 자료를 보면서 박도철, 박치선, 유치선 등 다양하게 적힌 이름들을 보면서 동일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도 어려웠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치선'은 집에서 부르던 이름었다고 한다.

지난해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현지조사 협조 요청을 받은 것이 생각났다.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포상을 전수하지 못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4.3만세운동에 앞장선 '남계홍(1870~미상)'이라는 분인데 본적이나 주소가 '충북 진천 만승 광혜원'으로 돼 있었다. 현재 광혜원면에서 보유하고 있는 제적부 중 호주가 남씨 성으로 돼 있는 모든 제적을 살펴 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추정이지만 이 분의 후손 역시 평탄한 삶을 살기는 어려웠나보다.

국가에서 독립 유공으로 내린 조상의 포상을 찾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조국을 위해 힘든 길을 걸었던 모든 분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이 땅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길 바란다.

/ 박미향 광혜원면 민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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