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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한권의 책을 읽든, 한편의 영화를 관람하든, 우리는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 빠져들게 된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워서, 독특하면 독특한대로 그들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선인과 맞서는 악한일지라도, 야비하면 야비한 대로 모든 것을 잃고 내려가는 추락의 깊이로 함께 간다. 고난이 훤히 보이는데도 여느 사람들이 가진 한계를 넘으며 나가는 주인공들과 고투를 같이한다. 그리고 고난의 극점을 향해 내닫는 그들을 결국 사랑하게 된다. 훤한 스토리임에도 그렇게 작가 의도대로 견인되어 가게 된다.

얼마 전에 나는 덴마크와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한편에 그렇게 몰입되어 관람했다. '애프터웨딩' 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 줄거리는 덴마크에서 성공한 한 기업오너가 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주변을 정리하는 내용이다. 그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쌍둥이들과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그리고 아내가 낳았기에 받아들여서 친딸처럼 온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키운 의붓딸이 있다. 그런데 목숨 같은 가족들과 평생 동안 피땀으로 일군 기업을 두고 죽게 된 것이다. 그는 가족과 기업을 맡아줄 사람을, 아내의 옛 애인이자 의붓딸의 친부로 결정한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지난일이 떠오르며 주인공이 처한 현실에 내 자신이 오버랩 되었다. 나도 자상한 남편과,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는 아들과, 수능을 준비하는 딸을 두고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일은 늘 생생하다. 당시 나는 의사로부터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첫 수술을 하고나니 몸무게가 7키로나 감량했는데 말이다. 근육이 녹아내려 발을 딛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기신기신 체력을 보강하던 참인데 재수술이라니, 살인적인 고통을 겪고 낙엽 같은 몸이 됐는데….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번에는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가 잡히자 안정이 안 되어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녔다.

'00병원입니다. 모레 오전에 입원하세요.'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보내온 문자를 받자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어 차를 몰고 나섰다. 대청 호수 변에 차를 세웠다. 유리를 내리지는 않고 그냥 있었다. 물에 비친 산 그림자가 음산한 것이 둔중한 죽음의 그림자로 보였다. 손을 잡은 연인들이 지난다. 여자의 미소가 해맑다.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으로 보아 바람이 부나보다. 나도 저렇게 눈부신 날이 있었지…. 하면서 내가 잘못될 경우를 상상했다. 먼저 가셨으니 친정부모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줄 일은 없다. 해결하고 가야할 척진 이들도 생각나지 않았다. 걸리는 건 남편과 아이들이다. 슬픔만 주고 갈 뿐 영화주인공처럼 남겨줄 재산은커녕 땅뙈기하나가 없다.

수술실은 푸줏간처럼 잔인했다. 차가운 침대위에서 나는 겁에 질려 떨었다. 몇 달 전에 이미 경험을 한지라 감각이 예리하고 뚜렷했다. 온 신경이 그때보다 더욱 예민해졌다. 잠시 뒤 나는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들 것이다. 화장대 서랍에 넣어둔 유서가 생각났다. "하나, 둘, 셋, 세시고 잠시 다녀오세요·" 의사는 농담처럼 말했다. 그의 말처럼 셋까지 세었다. 그리고 주여, 하는 순간부터 그 이후 일은 모른다. 그리고 마취에서 깨어나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저들이 내 몸을 어찌 한건가. 도무지 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온 신경이 일제히 곤두서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리한 유리조각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찔러댄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혼까지 휘감아 짓누르며 깊은 늪 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영화는 파티장면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아내를 위해 마지막 생일파티를 연 것이다. 그는 인도에 가서 고아들을 돌보며 사는 아내의 옛 애인도 초대했다. "당신은 내게 낮과 밤이었오." 주인공이 아내에게 말한다. "가슴속에 있는 그들과 함께 하십시오. 인생은 그게 전부입니다." 아직 혼자인 아내의 첫사랑이자 의붓딸 친부에게 그가 말한다. 그러면서 덴마크로 돌아와 살 것을 권면하며 아내와 결혼해 줄 것을 간곡히 설득한다. 명치끝이 아릿해진다. 어떻게 하면 저런 심장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보다 젊고 잘생긴 연적에게 평생일군 재산과 가족을 부탁하는 남자…. 흐느적거리며 흐르는 피아노연주가 사람마음을 미어터지게 한다. 그렇게 나는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그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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