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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작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신간 에세이 제목이다. 그렇다면 정초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새해를 출발하는 마음가짐에 나쁠 것이 없겠다. 옛 어른들이 듣는다면 '아침부터, 새해부터 죽음을 입에 올리다니 운수 없게…'라며 꾸중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죽음은 이미 삶 안에 들어와 있는 것. 지나간 하루하루는 추억이 될지언정 현재에 되살릴 수 없는 없다. 나의 삶 속에 과거는 이미 물리적으로 죽은 것이다.

세상 만물은 대부분 이원적 요소로 대립되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이 서로 접점될 때 더 상승 작용을 일으킬 때가 많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새 생명이 탄생되며, 흑과 백이 만나 새로운 색채가 발현된다. 이렇듯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얼마 전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던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코코'가 있다.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이란 전통 풍습을 다룬 내용으로, 멕시코 사람들은 사람이 세 번 죽는다고 믿는다. 첫 번째는 심장이 정지했을 때, 두 번째는 땅에 묻힐 때, 세 번째는 산 자들로부터 잊혀질 때 등이다. 이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가 저절로 떠올랐다.

이제가면 언제 오나. 멀고 먼 저승길.

쉬어가소, 쉬어가소. 한 번 가면 못 오는데

이리저리 살펴보고 가다가도 돌아보소.

구성진 가락은 꽃상여를 메고 물처럼 동네 굽이마다 휘돌더니 이내 산으로 흘렀다. 댓가지 끝에 달린 붉은 비단천이 바람을 가르며 산길을 찾았고 삼베 천과 한지에 검은 글씨를 쓴 만장들은 어깨를 흔들며 뒤따랐다.

눈부신 파란 가을하늘과 붉고 검은 상여행렬은 한 몸처럼 어울렸다. 산 사람의 지시에 따라 곡소리도 규칙적으로 격렬하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뒷짐 진 채 구경하던 동네 어른들의 흥성거림은 흡사 잔칫날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맞닥뜨린 죽음의 풍경들은 흔들리는 만장처럼 혼란스러웠다. 죽음은 슬픔이면서도 슬프지 않은, 이별이면서도 이별이 아닌 감정으로 중화되어져 갔다. 그때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낮달처럼 떠올랐다.

"울지 마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살아 있는 누군가가 이 할애비를 기억하는 순간, 내 혼은 죽지 않고 너와 함께 있을 게다."

유언처럼 말씀하시는 그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할아버지가 나와 더 살고 싶어하시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잊혀진다는 것이었다. 제사를 지내는 것, 대가 끊어짐을 염려하는 것 등은 단순히 유교적 관념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도 이승에서의 삶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심리였다.

탄생의 고통은 어머니와 더불어 함께 나눈다. 그런데 임종의 순간은 철저히 혼자다. 혼자 적막하고 어두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人間)에서 단독자인 인(人)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보라. 손바닥과 손등, 둘을 어떻게 떼어놓겠나. 뒤집으면 손바닥이고 뒤집으면 손등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이 있겠나. 빛이 없다면 어둠이 있겠나. 죽음의 바탕이 있기에 생을 그릴 수가 있다."

-이어령 교수의 <중앙일보> 2019 신년인터뷰 中

죽음에 대해 건전한 사색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좀 더 농밀한 삶을 살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인생의 전부로 살 수 있고 한 송이 꽃에도 크게 기뻐하는 마음이 일 것이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고, 새해 첫 날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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