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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오송도서관 운영팀장·수필가

도심을 벗어난 길은 한적하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쌩쌩 달리는 사람들에게서는 질풍노도의 젊음이 느껴진다. 시골길을 오가며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 때가 되면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산천초목. 꽃 피우고 알록달록 맘껏 풍류를 즐기다가 조용히 잠들어 있는 대지의 고요함. 고즈넉한 들판이 느긋함을, 기다림의 여유를 일깨워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의 단조로움.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선을 긋듯, 일정한 테두리 안에 나 자신을 가둬 놓고 촌각을 다투는 현실. 그 각박함에 "여유"라는 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빨간 신호등에 길을 멈춘다. 옆 차선에는 정지선을 반쯤 지난 차량이 삐뚤게 멈춰 서 있다. 무슨 급한 사정이 있는지 좌우를 살피며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간다. 급기야 직진 신호등이 켜지기도 전에 "쌩"하고 달려 나간다. 옆에, 뒤에 서서 바라보는 눈들이 얼마나 따갑고 민망했을까· 만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적한 도로 위. 다른 차들은 없고 빨간 신호등 정지선에 홀로 서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신호를 무시하고 가면 약속시간엔 늦지 않을 텐데. 신호를 지켜야 할까· 무시해야 할까· 순간적인 갈등에 휩싸일 수 있을 거다. 정지선과 신호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약속"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빨간 신호등에 정지하고 정지선에 멈추자는 것은 우리의 약속이다. 나와 너,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자고 규정한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기니, "교통법규"라는 더 강력한 약속인 법으로 제재(制裁)를 가하는 거겠지.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길을 나서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해야겠지.'라는 생각에 미칠 때 직진 신호로 바뀐다.

들판, 여기저기 놓여있는 커다란 원형 볏짚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어릴 적 운동회 때 학교 운동장에서 굴리던 하얀 공처럼 보인다. 공허한 들판으로 내려가 공굴리기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목가적인 시골의 한적한 도로가 마음의 여유마저 가져다준다.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혼자만의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애드벌룬을 타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가볍게 액셀을 밟는다. 멀리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깜빡깜빡 거린다. 빨간 신호등을 만났을 때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 나사못으로 꽉 조여졌던 심장이 무장 해제되어 쾅쾅 거리는 느낌이다. 앞서 빨간 신호등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쌩하니 도망가듯 질주했던 차량이 깜빡거리는 신호등에 오버랩 된다. '너라면 좋았을 걸' 점멸등이라고 불리는 너를 만났다면 죄인처럼 머뭇거리며 빨간 신호등 앞에서 양심을 잃지 않았을 텐데. 점멸등의 깜빡거림은 사정이 급한 사람의 심정을 알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오는 빨간 신호등 하고는 다름이 있다.

혹여, 살아오면서 빨간 신호등처럼 사람들에게 강압적이지는 않았는지. 자를 대고 선을 긋듯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서슬 퍼런 칼날을 세우지는 않았는지. 주변을 살피고 진입하라는 깜빡거리는 점멸등처럼. 사람의 마음을 두루두루 살피며 살고 싶다. 조급한 마음으로 늘 획획 지나쳐 버렸던 점멸등이 오늘 내게 전해주는 이야기. 조바심 내지 말고 삶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무조건 안 돼요"라는 말보다는 "가능한 되는 방향으로"라는 긍정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길 바라는 지혜가 숨어 있지 않을까.

추위에 꽁꽁 언 손과 발. 시리게 몰아치는 찬바람에 아픈 가슴을 움켜잡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음의 점멸등을 켜 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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