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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1.20 17:27:32
  • 최종수정2018.11.20 17:27:32

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회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내 다시 고향에 갈 수 있다면/ 나는 오랫동안 그 다리 위에 서 있으리라'

 전자는 헤르만 헷세(1877~1962)가 1919년에 쓴 소설 '데미안'의 핵심 문장이고 후자는 그의 시 한 구절이다.

 이 문장과 시는 나에게 감동과 교훈을 줬고 내가 천리타국 남부 독일 헷세가 태어난 칼브시까지 찾아가 그의 특이한 동상과 맞닥뜨리게 한 끈이었다.

 내가 데미안과 처음 만난 것은 뜨거운 청소년기, 그러니까 몹시 목이 타던 시절이었다. 그 책을 몇 번이나 밤새워 읽고 가슴이 뒤흔들리는 큰 충격을 받으면서 내 영혼에 횃불이 밝혀졌다. 무엇이든 태어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하는 법이다. 예컨대 태어나고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는 것,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는 것, 시인이 되는 것, 많은 작품을 창작하는것 등은 성장이고, 알을 깨뜨리고 새가 돼 하늘로, 즉 신에게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신 아프락사스는 종교적인 신이 아니고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 것, 그것이 아프락사스라고 했다.

 아주 훗날 나는 딸이 유학하는 독일에 가서 온 가족이 헤르만 헷세가 태어난 카브시를 찾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의 생가에 이르니 중세시대 귀족들의 권유를 상징하는 문장이 붙어있는 3층 저택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가 일생에서 쓰던 생활용품부터 그가 직접 그린 그림 스케치나 유화, 수많은 사진과 그가 사용하던 펜, 원고 그리고 그의 저서들로 꽉 차 있었다. 한국어로 번역한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청춘은 아름다워라 등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곳을 나오며 나는 펜을 들고 싸인첩에 적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조국은 참으로 많은 수난을 겪고도 모자라 절대 빈곤 속에서 신음하면서 아파할 때 나는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날을 지새울 무렵에 당신의 데미안을 만나 밤새워 읽고 감동했습니다. 아무도 내게 데미안 같은 방법으로 인생을 설명하고 영혼을 일깨워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타국만리 까지 찾아와 이렇게나마 당신을 만나니 가슴이 벅찹니다'

 나는 그 보다 더 길게 적었다.

 그곳을 떠나 시내(소읍)로 내려오는 동안 은행과 음식점과 카페 등을 지나치니 저만큼 소읍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냇물과 그 위에 놓인 다리가 보였다. 무심코 다리 입구에 이르러 나는 흠칫했다. 어디나 다리 위에는 양켠으로 인도가 있고 가운데는 차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뚱딴지같이 웬 사나이가 차도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문에 지나던 차도 조심스럽게 그 사람을 피해갔다. 나는 가까이 다가서자 정말 깜짝 놀랐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동상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동상은 높은 곳에 단을 쌓고 세우면서 주위에 작은 울타리를 쳐 접근을 금하고 권위를 이끌어내는 곳에 세우는데 그 동상은 구두로 차도를 직접 밟고 있는 헤르만 헷세가 아닌가 내가 어찌 충격을 받지 않겠는가. 다리 난간에 동상건립 설명서를 딸이 번역해줬다.

 시인이 고국을 오래 떠나 살 때 쓴 시 '내 다시 고향에 돌아 갈 수 있다면/ 나는 오랫동안 그 다리 위에 서 있으리라'는 소망에 따라 우리 고장이 낳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위대한 시인의 동상을 여기 세운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슴없이 달려가 그의 곁에 서서 최대한의 존경을 표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 후 10년에 걸쳐 두 차례 더 그 동상 곁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왜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권위를 다 내려놓은 참으로 인간적인 헷세의 동상 같은 예가 다른 곳에는 없는 것일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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