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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한 결정적 이유는 도심 가운데 둘러친 숲이 좋았기 때문이었죠. 무언가 숨통이 확 트이는 것 같았거든요. 벌써 2년이 넘었지만, 오래 살았던 전의 집이 생각 안날 정도로 맑은 공기가 참 좋습니다.

 이사 후, 한 달쯤 흘렀을 때 아랫집 사람들로부터 밤늦게 발자국 소리가 너무 커 불편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사과를 했고, 야행성인 대학생 아이들에게 밤에는 집안에서 발꿈치를 들고 다니라고 거듭 주의를 줬죠. 하지만 잊을 만하면, 아랫집 부인이 찾아와 "우리 집 양반이 워낙 예민해서 그러니 10시 이후에는 좀 조심해 달라."고 재차 부탁하는 거였습니다. 세상일이란 완벽하게 좋은 법은 없는 가 봅니다.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어 무척 만족을 하고 있었는데 예기치 못하게 이웃하고 불편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도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보니 차 소리도 전혀 없고 상대적으로 유난히 조용해서 층간소음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집은 사회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온한 공간이죠. 밖에서는 함부로 하지 못했던, 편안한 옷차림과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공간입니다. 그런데 아랫집의 항의로 인해 행동의 제약받으니 심신이 편치 않았습니다. 층간소음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돼서 험한 일도 발생하는 요즘이 아니던가요. 하지만 개인주택이 아닌 공동주택의 한계를 절감하며 지켜야 할 공공질서의 한 부분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게 아랫집과 다소 서먹하게 지내며 시간이 흘러 지난 여름, 우연히 아랫집 남편과 인사를 나누게 됐습니다.

 "저희 집 때문에 많이 불편하셨죠? 아이들도 주의를 하고 저희들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또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아닙니다. 그 뒤로 별로…"

 얼떨결에 만나 나누게 된 인사였지요. 그런데 얼마 전, 시골에서 감 한 박스가 배달돼 왔습니다. 매년 이맘때 즈음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이었지요. 시골 앞마당에서 매년 우리에게 몇 십 년째 값없이 선물을 주는 감나무를 생각하며, 아랫집에도 한 바구니 가득 담아 가져다주었지요. 다음 날, 빈 바구니를 보낼 수 없었던 지 아랫집에서 바닷가에 놀러갔다 왔다면서 싱싱한 해산물을 담아 보냈더군요. 그 이후로 아내는 뭔가 나눌 것이 생기면 기꺼이 아랫집에 가져다주곤 했지요. 안사람들끼리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우연히 만나면 벤치에 앉아 제법 긴 이야기도 나누게 됐어요. 좋은 이웃이 된 겁니다. 한 날 저녁 아내가 말합니다.

 "어제 아랫집에서 이제 발소리가 안 들린다고, 조용하다고 그러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리도 마음에 따라 들리기도 하고 안 들리기도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죠. 사실 방심한 탓인지 아이들과 저는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여전히 밤늦게 커피 마신다고 부엌을 드나들고 아이들도 늦은 밤 라면을 끓여 먹으며 친구까지 불러다 자유롭게 활보하며 다녔으니까요.

 화엄경의 중심사상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의미죠. 같은 사물을 동시에 바라볼 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법입니다. 똑같은 상황임에도 변한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아래윗집이 서로 마음이 통하니 소음이라고 불편했던 마음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뀐 겁니다.

 뒷산 숲자락에 붉고 노란 카펫이 깔리며 숲 속 나무들의 몸피가 날로 헐거워지는 풍경을 보니 계절의 순환이 하루하루 실감납니다. 채우고 비워지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며 삶의 평범한 일상도 또한 변화 속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저 낙엽이 단순히 소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뭇 생명의 밑거름이 되듯이 인간사의 희로애락도 그러할 것입니다. 다가올 우리 집의 겨울밤은 전보다 더 따스하고 포근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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