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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며칠 전 이웃 아주머니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동네 주부들을 상대로 어느 여인이 고리(高利) 이자를 주겠다고 속인 후 수십억을 사기해 도주 했다는 내용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에 주먹이 쥐어진 것은 지난날 친구 일이 떠올라서이다. 중학교 때 일이다. 단짝인 친구가 갑자기 학교에 결석했다. 걱정 끝에 그 애를 찾아갔다. 친구는 장터에서 닭장수인 어머니를 돕느라고 학교를 결석했다고 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걸핏하면 학교를 결석했다. 나중에 안 일이다. 친구 아버지가 지인 꼬임에 빠져 전 재산을 몽땅 잃었다고 했다. 그 애 아버지 역시 돈을 빌려주면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유혹에 빠져 전 재산을 차용증도 없이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지인은 같은 수법으로 여러 사람에게 돈을 빌린 후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고 했다.

 이 일로 친구 아버진 날마다 자신의 시름을 술로써 달래곤 했다. 실의에 젖어 마음이 피폐해진 나머지 심지어는 알콜 중독자로 전락해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가장이 이런 형국이다 보니 당장 가족들 생계가 막막했다. 하는 수없이 가족의 생계는 친구 어머니가 도맡아야 했다.

 가족들 호구지책을 위해 그 애 어머닌 궂은일을 가리지 않았다. 삯바느질을 비롯해 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생계를 겨우 꾸렸다.

 그러나 궁색한 생활을 면치 못하자 친구 어머닌 시장에서 닭 장사를 시작했다. 번듯한 가게 한 칸 얻을 돈이 없는 처지라 장터에서 노점을 벌여 닭을 잡아 팔곤 했다.

 나는 학교가 일찍 파하는 날엔 친구가 보고 싶어 시장엘 갔다. 사람들이 붐비는 장터, 비닐 앞치마를 두른 그 애가 한 손엔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도마 위에 닭을 올려놓고 닭 배를 가르는 모습이 저만치 보였다.

 반가움에 단숨에 그 애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나를 본 그 애는 자신의 닭 잡는 모습을 내게 들킨 게 부끄러웠나보다. 마침 닭 모가지를 향해 내리치던 무쇠 칼을 거둬 황급히 등 뒤로 숨긴다. 그런 친구가 왠지 측은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려고 남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그 애는 장터에서 닭 모가지나 비틀고 있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랴.

 그 아이 집안 형편은 날이 갈수록 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마저 병석에 덜컥 누웠다. 자리보전한 지 얼마 안 돼 그 애 어머니는 화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된 그 애는 날만 새면 손에 책 대신 닭 잡는 무쇠 칼을 늘 들고 지내야 했다. 중학교도 졸업 못한 채 어린 몸으로 가족들 생계를 도맡아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가정을 풍비박산 시킨 친구 아버지 지인이다. 몇 년 후 어느 지방에서 그를 본 사람 말에 의하면 비싼 양복을 쏙 빼 입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검정색 자동차를 몰고 다니더란다.

 한 가정을 무참히 무너뜨린 친구 아버지 지인은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 타인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신 눈엔 피눈물 난다는 옛 말이 왜 이런 경우엔 유효하지 않을까.

 그릇된 욕심으로 말미암아 한 가정이 파괴되고 그로인해 한창 꿈을 가꿀 어린 꿈나무들이 꿈을 꺾이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친구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연약한 몸으로 식당 일, 파출부, 가발 공장 등을 전전한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그 후로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아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이렇듯 찬바람이 불면 장터에서 닭 모가지를 비틀던 버짐이 덕지덕지 앉은 초췌한 친구 얼굴이 눈앞을 스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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