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바둑은 흑과 백의 집 겨루기 싸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전쟁터입니다. 총포의 포효 대신 바둑돌의 청아한 소리가 흑과 백의 터질 듯한 긴장감을 한껏 응축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둑은 우리의 인생사와 많이 닮았다고 하죠.

 좌우 19개의 줄과 가로 세로 씨줄 날줄로 엮어진 반상(盤床)의 세계에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철저한 집계산으로 승패가 좌우되지만, 처음 바둑판을 짜는 포석에서부터 중반 전투 그리고 마지막 끝내기까지의 과정을 거쳐야 바둑은 마무리됩니다.

 마치 사람이 어린 시절을 거쳐 청년, 중년기 그리고 인생 말년까지의 삶과 비교해 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그런 까닭에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컴퓨터도 가장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가 바둑이라고 했지요.

 바둑은 계산만으로는 되지 않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동반된 게임이기에 계산만 정확한 컴퓨터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러나 알파고의 등장으로 바둑계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죠. 인간 고유의 영역을 무참히 짓밟고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었던 겁니다. 수많은 기보를 축적해서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최적의 수를 찾아낸 결과죠. 알파고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의 바둑이론이 무너지고 신수(新手)가 등장했어요.

 "알파고는 바둑의 신(神)이지. 그동안 인간이 만든 바둑의 정석은 다 수정되어야 돼. 점점 사람들이 두는 바둑의 인기는 떨어질 거야."

 이렇듯 대중에게 한동안 알파고의 바둑이 회자됐지만, 다시 사람의 바둑은 되살아났습니다. 인공지능의 역할은 사람의 수순을 비교해보며 검증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요.

 이제 요즘 프로기사들은 AI로 바둑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알파고로 잠식될 것 같았던 인간의 바둑은 오히려 알파고를 훈련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알파고는 변화의 여지가 도통 없죠. 격정적인 감동과 쓰라린 아픔이 없으니 흥미가 떨어지는 겁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의 삶은 어떤 수치로도 재단할 수 없죠. 그만큼 변수가 많은 삶이니 또한 극복하고 이겨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알파고의 바둑은 소설로 말하면 기승전결(起承轉結)은 없고 오직 결(結)만 존재하는 셈이죠.

 바둑에서 흔히 '뒷맛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파고가 계산을 통해 인간을 이길 수는 있지만, 삶의 절묘한 감정과 향기는 품어내지 못합니다. 알파고는 긴장되고 어려운 순간에도 감정이 없으니 절대로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저 계산된 수치에 의해, 축적된 데이터가 만든 좌표로 제 갈 길만 가니 절대로 실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경기의 재미가 떨어지고 극적인 승부란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바둑을 두면 실력 이외의 변수로 인해 승부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둑의 승부는 정확한 집계산에 의해 결정되지만, 중요 승부처에서는 감정을 지닌 사람이기에 흔들리는 경우가 다반사죠.

 바둑 두는 이의 개성 또한 바둑의 세계를 다채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창호의 바둑과 유창혁의 바둑을 비교하는 재미를 인공지능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바둑 두는 것을 흔히 '수담(手談)을 나눈다.'라고 합니다. 바둑은 침묵 속에 오직 돌 놓는 소리만 청명하게 들립니다. 한 수 한 수, 마음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지요.

 '이 수는 너무 무리수 아닌가요?'

 '그렇다면, 어디 응징해보세요.'

 상대방의 수를 읽으면서 서로 표정과 호흡을 살피기도 합니다. 무언의 대화를 통한 한 판의 바둑으로 압축된 인생의 묘미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바둑에서 맛을 남긴다는 것은 여지(餘地)를 남겨놓는다는 것이죠. 맛이 남아있는 삶은 다시 희망을 남겨놓는다는 말과 같아요. 바둑에서는 그 맛으로 인해 죽은 돌도 살리는 묘수(妙手)의 실마리가 될 수 있거든요.

 알파고와 사람의 바둑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바둑은 맛이 남아있다는 거죠. 회생의 여지없이 절망적인 것 같아도 맛을 남기는 삶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희망이 남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올 추석에는 반상에서 삶의 향기가 가득한 수담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