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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미디어전략팀 김희란 차장의 日 간사이공항 탈출기

"난 존중받지 못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4박5일 간 남편과 늦은 휴가 귀국길 평생 못잊을 악몽 경험
태풍 속 고립… 36시간 난민
엄청난 바람·거친 파도 '공포'

대부분 한국인들 기댈 곳 없어 스스로 극복
중국 여행객들은 대사관 주도 하 신속 탈출

  • 웹출고시간2018.09.09 21:00:00
  • 최종수정2021.07.01 13:06:44

편집자

본보 미디어전략팀 김희란 차장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9월 5일 회사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복귀에 앞서 김 차장은 남편과 함께 지난달 31일 일본 오사카로 늦은 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4일 귀국 예정이었다. 청주국제공항의 일본 첫 정기노선을 이용했다. 이제 돌도 되지 않은 아이는 고맙게도 시어머니가 맡아 줬다. 복귀 전 여행지인 오사카에서 김 차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을 경험했다. 본보는 우리 국민과 정부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오사카 사태'에 대한 경각심 고취 차원에서 김 차장의 간사이공항 탈출기를 마련했다.

암흑이 된 공항에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던 관광객들이 에어로 플라자에 있는 전광판을 살펴보고 있다.

ⓒ 김희란기자
[충북일보] 당초 계획은 10월 1일 출근이었다. 하지만, 인력난을 호소하는 회사의 제안에 9월 5일 복귀를 결정했다. 그동안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비교적 젊은 시어머니의 적극적인 육아지원으로 우리 가족은 늘 행복했다.

남편과 함께 늦은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이가 눈에 밟혔다. 시어머니의 배려로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일본 오사카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 없이 남편과 함께 9월 3일까지 마치 신혼여행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9월 4일부터다.

4일 오전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조용한 날씨 때문에 태풍 예보를 잊을 정도였다. 오사카의 대중교통은 오후부터 운행 중단을 예고해 그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것은 항공사 부스 앞에서다. 사전예고 없이 결항을 통보하는 항공사 직원들에게 항의하는 사람들의 높아진 언성이 곳곳에서 나왔다.

모든 항공편이 결항돼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로 귀국 일정을 늦춘 관광객들은 공항에서의 하룻밤을 준비했다.

이날 오후가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엄청난 바람과 함께였다. 바다 위에 세워진 간사이공항은 일렁이는 파도까지 눈앞에 보여 공포를 더했다.

아직은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있는 관광객들. 저녁이 되자 바닥에는 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들로 발 디딜틈 없었다.

ⓒ 김희란기자
오후 1시 30분이 되자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에 공항과 연결된 에어로 플라자 천장 유리가 깨지면서 파편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곧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공항과 에어로 플라자도 각각의 작은 섬이 됐다. 호텔이 있는 에어로 플라자 쪽은 공항에 비해 상황이 좋았다.

호텔 측에서는 1층 연회장을 개방해 대피소를 마련했다. 앞선 안내방송과 달리 일본어로만 공지했지만 같은 식당에 있던 일본인들 덕분에 비교적 일찍 대피장소에 도착했다.

담요와 물, 비상용 비스킷 등이 제공됐다. 복도, 화장실 앞 등 지정된 장소 외에도 여행객들로 붐볐다. 물품은 제한적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옷가지나 신문지 등으로 바닥의 냉기를 막았다.

운 좋게 담요를 얻은 뒤 받은 것은 재해시 보급하는 물과 비스킷. 난민이 됐음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건물 내 하나뿐인 편의점은 식량을 비축하려고 늘어선 사람들로 인해 금세 동이 났다.

태풍이 공항을 휩쓸고 간 시간은 서너 시간 남짓. 바람이 잦아들자 공항 쪽으로 이동이 허용됐지만 공항은 어두웠고 통신은 두절된 뒤였다.

향후 일정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가 없었다.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내일(5일) 오후나 돼야 복구가 된다"는 말이 오갈 뿐이었다.

5일 새벽이 되자 일본어와 영문으로 프린트된 종이가 돌아다녔다. 오전 6시부터 고베항으로 향하는 배편이 마련되니 원하는 사람들은 해당 플랫폼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상황을 정확히 알 수없는 한국인들은 항공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기다렸지만 불 꺼진 공항에 나타난 직원들은 거의 없었다.

일부 항공사 창구에는 이날 오후 결항 안내문이 붙었지만 그마저 없는 곳이 더 많았다. 같은 장소에 머물던 중국인들의 사정은 달랐다. 주일 중국 대사관의 주도하에 빠르게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자국민들을 위해 마련한 버스를 이용해 공항을 빠져나갔다.

한국어가 들리면 속속 모였다가 흩어지며 상황을 공유했지만 이미 배를 타기 위한 탈출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종일 길게 늘어진 탈출 행렬. 왼쪽을 향해 서있는 사람들은 고베항으로, 오른쪽으로 서있는 사람들은 이즈미사노 역으로 향하는 이들이다.

ⓒ 김희란기자
새벽부터 줄을 섰다는 한국 청년들에게 물으니 무려 6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자리라고 했다.

일시적으로 주먹밥과 물을 배급했지만 별도의 안내는 없었다. 운이 나쁜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샀던 간식을 뜯어 허기를 면했다. 통신이 가능한 곳은 극히 일부인데다 안정적이지 않아 자리를 옮겨가며 정보를 검색했다.

기사로 알게 된 공항 상황은 심각했다. 유조선과 부딪힌 다리는 공항을 고립시켰고 물에 잠긴 활주로는 바다와 다름없었다.

50여명이라고 언론에 보도된 한국인의 숫자는 기자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수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영사관도 항공사도 답이 없었다.

불 꺼진 공항에서 방황하고 있는 관광객들. 이 곳에도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아는 이는 없었다.

ⓒ 김희란기자
SNS에는 속속 청년층의 탈출 소식이 올라왔다. 구글링 등 검색 능력을 적극 활용해 티켓을 구하고 다른 공항으로 이동해 빠져나가거나 비용이 부족해 배편을 이용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여행을 준비했던 카페에 문의해 티켓과 숙박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중·장년층의 대책은 달랐다. 한국어가 들리면 말을 붙여보고 같은 항공사나 목적지끼리 모여 함께 행동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뒤늦게 로밍서비스를 신청해 국내 지인들과의 통화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아이가 있어 줄을 설 수 없거나 상황을 보며 기다리던 관광객들까지 짐을 챙겼다.

어느덧 탈출방법은 두 가지가 됐다. 고베로 향하는 배편 외에 인근 이즈미사노역으로 향하는 버스도 생겼다.

직원들이 퇴근하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버스가 급격히 늘었다. 10시간 동안 서있어도 타지 못했다는 사람들 뒤에 선 우리는 1시간도 채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평소 20분 거리라는 이즈미사노역까지 정확히 2시간이 걸렸다. 이전 버스까지는 6시간이 걸렸다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많은 버스가 투입된 밤 늦은 시간이 되자 탈출에 속도가 붙었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 이미 밤 12시다. 통신 장애가 풀리자마자 검색을 통해 인근 숙박을 예약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우연히 영사관 직원을 만나 10분 거리의 호텔까지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6일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타고 도쿄 나리타공항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6일 늦은 오후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 항공사와의 수없이 많은 통화 내용은 생략한다.

공항에서의 36시간 난민체험은 제쳐두더라도,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출발해 청주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7시간.

청주공항에서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갔던 시간과 돈에 비해 너무 길고 비싼 여정이었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그곳에 있었다. 호주에서 자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환승역에서 화를 당한 사람, 아이 때문에 일정이 늦어진 신혼부부, 생애 첫 해외여행인 대학생.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디에 기댈 곳 없이 스스로 상황을 극복해야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고립됐던 그들이 바란 것은 당장의 문제 해결 또는 비용이 아니었다.

현재 상황이나 앞으로 계획을 정확히 알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항공사든, 총영사관이든 나와 관계된 기관의 당연한 관심, 말이다.

'악몽의 3일'을 보낸 우리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귀국 후 아이를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본 오사카 / 김희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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