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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8.09 17:04:50
  • 최종수정2018.08.09 17: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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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서원의 정면에는 읍궁암이라는 곳이 있다. 읍궁암(泣弓巖)은 희고 넓적한 바위가 있는데 조선의 임금 효종이 죽자 우암송시열이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엎드려 통곡하였다 해서 후일 사람들이 읍궁암이라 불렀다. 읍궁암은 화양서원 앞 냇가에 있는데 암반 위에 구멍이 독특하게 파여 있다. 효종이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하자 우암이 매일 새벽 한양을 향하여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던 바위라 읍궁암이라 한다. 이때 떨어진 눈물이 바위를 뚫어 눈물 자국 같은 구멍을 낸 것이다 라는 전설도 지어내는 바위의 구멍이다. 이것은 자연의 일부지만, 자연의 모양에도 명분을 만들기 위해 후대 사람들은 노력을 하였다. 그 노력의 일부가 읍궁암 유래비이다.

화양서원은 1695년(숙종 21)에 유학자 우암(尤庵)송시열(宋時列, 1607∼1689)의 영정을 모시고 그를 제향(祭享)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창건 이듬해 숙종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았는데, 전국의 사액서원 중 명성이 높고 위세가 당당했다고 전해진다. 서원 앞 잔디에 세워진 읍궁암 유래비는 원래 읍궁암바위의 네모난 홈에 들어가 있는 것인데 큰 비가 오면 쓸려 내려가기를 반복적으로 하여 총 5기의 읍궁암 유래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유래비는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가 1717년 (숙종43) 읍궁암 비를 세웠다. 그리고 다른 비는 1725년 이후에 다시 세운비다. 읍궁암의 비는 원래 총 5개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4개가 화양서원과 만동묘 정문 앞에 있고 나머지는 하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동일한 비석을 세우는 이유는 분명이 있다. 비석의 내용은 모두 같지만 비석을 세운 이름만 다른 이러한 비는 명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일이다. 조선시대 노론의 중요한 정치적 거두는 우암 송시열이었다. 우암처럼 영향력 있는 스승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기 마련이지만 스승이 돌아가신 이 후는 제자들의 위치가 조금 애매해 진다. 노론의 경우 서울에서 벼슬을 위해 한양생활을 시작한 사람부터 지역에서 글을 읽으며 관직을 노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1709년 충남 보령의 한산사에서 송시열의 제자 권상하의 제자들이 모여 성리학의 논점에 대한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 토론의 주제는 인성과 물성의 차이였다. 이간의 주장은 만물은 하늘에게 덕성을 물려받기 때문에 차이는 다르지만 덕성은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었고, 한원진은 인간과 동물은 기질이 다르므로 근본의 차이 에서오는 덕성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둘의 주장은 보기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당시 신분제도 변화의 문제와 국제적 주제인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것에 대한 명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명나라를 숭상하던 우암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들 제자들끼리 명분을 유지하는 토론이 계속된 것이었다. 당시 권상하는 충청노론계의 대표였고 김창협은 서울 노론계의 대표였으니 둘 간의 근본에 대한 논쟁은 쉽게 결판나기 어렵게 되었다.

서울 노론계인 낙론계는 청나라를 배척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주장하였고, 조선이나 청나라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은 동등하니 잘 연마를 하면 정통을 찾을 수 있다 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호서지역의 호론계는 그들의 주장을 동물과 인간을 구분 못하는 것으로 보고 차이를 세분이 구분하여 혼란이 생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주장의 정당성을 얻고 우암 송시열의 적통을 주장하기위해 큰비가 올 때마다 떠내려가던 읍궁암의 유래비를 다시세우기를 5회나 한 것이 아닐까· 효종이 하려했던 청나라를 몰아내는 북벌의 정당성이 떠내려가려는 것을 막고 자신이 가진 기득이 서얼, 중인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 것은, 결국 우암을 빗대어 만든 명분 쌓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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