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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강리 고택'이 '홍판서 댁' 으로 바뀐 이유는?

세종시 "청주 부강리 고가와 헷갈린다"며 4번째 개명

  • 웹출고시간2018.06.26 14:39:16
  • 최종수정2018.06.26 14:39:16

'세종 부강리 고택(世宗 芙江里 古宅·부강면 부강리 385·국가민속문화재 138호)' 모습. 세종시는 청주문의문화재 단지에 있는 '청주 부강리 고가 (淸原 芙江里 古家)와 헷갈릴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집 이름을 '세종 홍판서 댁'으로 바꾸기로 했다.

ⓒ 최준호기자
[충북일보=세종] 세종시에 남아읶는 대표적 조선시대 양반집인 '세종 부강리 고택(世宗 芙江里 古宅·부강면 부강리 385·국가민속문화재 138호)'이 '세종 홍판서 댁'으로 이름이 바뀐다.

세종시는 " 부강리 고택이 청주문의문화재 단지에 있는 '청주 부강리 고가 (淸原 芙江里 古家·문의면 문산리 산 6-1·충북도 유형문화재 221호)'와 이름이 비슷해 방문객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관련 학술연구용역을 거쳐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청주문의문화재 단지에 있는 '청주 부강리 고가 (淸原 芙江里 古家·문의면 문산리 산 6-1·충북도 유형문화재 221호)' 모습.

ⓒ 청주시
시는 "1866년(고종 3년) 건립된 부강리 고택에서는 조선후기 문신이자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비의 조카 홍순형(1858~미상)이 거주한 사실이 있어 '홍판서(예조판서)의 집'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유계화는 조선시대에 이 집에 살던 안주인(여성)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집은 당초 행정구역이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였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이름을 '청원 유계화 가옥'이라고 지었다.
ⓒ 네이버
그러나 2012년 7월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세종으로 편입되자 방문객들이 헷갈릴 수 있다는 이유로 그 해 12월 '세종 유계화 가옥'으로 바꿨다.
이어 세종시는 지난 2016년 '세종 부강리 고택'으로 다시 변경했으나,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유계화 가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청주 부강리 고가'는 당초 부용면 부강리 김종철(金鍾喆)씨가 살던 조선시대 후기 건물을 현 장소로 이전,복원한 것이다.

세종 / 최준호 기자 choijh5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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