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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영웅' 청주 출신 조남기 장군 별세

中 베이징서 91세 나이로
공식발표 후 국가장례 예정
軍 최고위 계급 상장 역임
평생 소수민족 위해 헌신

  • 웹출고시간2018.06.19 21:09:05
  • 최종수정2018.06.19 21:10:00

생전의 조남기(오른쪽) 장군, 왼쪽은 조카 조흥연씨.

ⓒ 조흥연씨
[충북일보=서울] "작은 아버지께서는 평생 소수 민족(조선족)의 설움과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온 몸을 바쳐 일해 오신 분이십니다."
 
지난 17일 밤 중국 베이징에서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하신 조남기 퇴역 장군의 조카 조흥연(72)씨는 작은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했다.
 
조씨는 "작은 아버지의 시신은 현재 베이징 인민해방군 301병원에 안치돼 있다"며 "장례를 위해 20일 베이징으로 출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아직 조 장군에 대한 사망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고인은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은 뒤 국가장례로 치러질 예정이다.
 
조씨는 "조선족들의 설움을 위해 중국 연길시를 조선족자치주로 만들었다"며 "중국의 한 자녀 출산 정책 상황에서도 조선족만큼은 2명까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중국정부를 설득했고, 식량배급도 차별받지 않게 동등하게 이뤄지게 힘쓰셨다"고 회고했다.
 
중국군 최고위 계급인 상장(대장) 출신의 조 장군은 당 중앙위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부총리급),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군수사령관 격)직을 역임했다.
 
조선족은 물론 55개 소수민족을 통틀어 중국 정계 및 군부 최고위직에 올랐다.
 
옛 청원군 출신인 그는 1940년 14세 나이로 독립투사인 조부와 부친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백두산 기슭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45년 12월 중국 혁명에 참가했다.
 
1947년에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고인은 6·25전쟁 참전 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일하며 1960년대 중국 지린성 연변군구 정치위원(사단장급)으로 승진했다.
 
6·25 참전과 조선족 출신을 배경으로 군 고위직에 오른 조 장군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0년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4년 6월 두 차례 방한했다.
 
1992년 한중수교 성사를 위해 막후에서 남모를 역할을 펼쳤다는 후문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고 조남기 장군은 중국 공산당의 우수당원으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충성한 공산주의 전사였다"며 "무산계급 혁명가이자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였다"고 타전했다.
 
고인의 고향인 청주시 강내면 태성리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흉상이 건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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