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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퇴근길에 나선다. 쌩쌩 달릴 수 있는 우회도로 대신 느림의 길을 선택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시사철 자랑하는 가로수길로 진입했다. 신록의 푸르름이 몸의 피로를 날려주고 긴장된 근육을 풀어준다.

미세먼지로 차창을 꼭 닫고 다닌 지 오래이나, 오늘은 가로수길이 주는 아늑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창문을 내린다. 가로수길 중앙분리대 화단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이 연신 춤을 추어댄다. 춤이라고 표현하기보단 살고자 하는 갈망으로 흔들어대는 삶의 몸부림으로 느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천천히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기둥이 올라와 숨을 가쁘게 한다. "그 많은 곳을 놔두고 하필이면 차들이 수없이 오가는 이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어느 부잣집의 잘 꾸며진 정원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으면 그렇게 험한 꼴은 당하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워진다. 종류도 다양한 차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와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버티고 있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덤프트럭이 세찬 바람과 열기를 내놓는다. 한바탕 온몸을 크게 흔들고 보란 듯이 꼿꼿이 제자리를 찾아 평정을 유지한다. 크지 않은 작은 체구로 야생마와 같은 기질의 꽃들과 풀들을 보니, 언제부터인가 생겨난 "금수저, 흙수저"란 단어가 떠오른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으로 본인의 수저가 결정된다는 수저 계급론을 일컫는다. 청년실업, 부익부 빈익빈 등의 각종 사회 문제와 맞물리는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말이겠지· 가로수길에 놓인 꽃들과 풀, 나무들을 보니 이곳에도 같은 이론이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차량 통행이 많은 중앙분리대, 잘 가꾸어진 시민공원,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집 마당.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품격의 주인을 만나는가에 따라 같은 꽃, 같은 나무라도 삶의 흔적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가로수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지나 신호대기 중에 보라색 꽃과 만났다. 매연 뿜어대는 이곳 중앙분리대에서 거친 풍파와 사투하고 있으면서도 쌩긋 웃는 듯한 표정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그 웃음이 나를 아프게 한다. 취업이라는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자식 같은 젊은이들의 미소처럼 다가온다. 수저 계급을 논하며, 내 편은 없는 듯한 세상을 탓하며, 쉽게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너처럼 예쁜 꽃도 피고 씨앗도 영글게 할 텐데'라고 속삭여 본다.

살아가는 환경에 의하여 생존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삶에 대한 꿈과 애착마저도 다를까· 며칠 전 "금수저, 흙수저를 대표하는 농림계의 거목 두 분"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한 분은 금수저 중에 금수저인 대그룹 회장이었고, 또 한 분은 농업 방송에 일생을 바친, 평생 비정규직이었던 작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두 분의 공통점은 해방둥이였고 자연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환경을 탓하며, 지금은 어떻고 내일은 어떻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게을리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글이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살아갈 내 아들과 딸이. 태어난 환경을 탓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세상의 모진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중앙분리대에 피어난 꽃들과 풀처럼 자신들의 삶에 대한 철학과 의지로 곳곳 하게 말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보며, 스스로를 강인하게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은 느릴지라도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찾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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