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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조선유교사회에서 새로 임명되는 지방 수령들이 가장 우선을 두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처리였다. 늙은 나이에 아내가 없는 것을 환(鰥), 남편이 없으면 과(寡), 부모가 없으면 고(孤), 늙어 부양할 자식이 없는 것을 독(獨)라고 했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왕도정치를 묻자 이 문제를 잘 처리해야 현군이라고 가르친 데서 유래한다. 조선을 개국한 이태조는 즉위한 직후 백성들을 위한 교서를 내렸다. 이태조가 제일먼저 주문한 것이 바로 '환과고독'에 대한 지방 수령들의 책무였다.

"환과고독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구휼해야 될 것이다. 해당 관청에서는 굶주리고 곤궁한 사람을 진휼하고 그들의 부역을 면제해야 한다."

조선시대 후기 황해도 장연현감으로 부임한 김희채는 홀아비 과부를 짝지어 주는 일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바로 환과고독을 해결하는 것이 목민관의 첫 임무로 생각한 때문이다. 당시 보쌈은 약탈혼이라는 중대 범죄였지만 관아에서 눈을 감아주었다.

보쌈은 수절(守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탈 유교적 풍속이기도 했다. 사대부가에서도 청상과부가 되면 은근히 보쌈 신세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딸이 평생 고독한 생을 살아야할 고통을 걱정한 부모가 비밀리 보쌈을 시켰다는 고사도 있다.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에 가마골이 있다. 속칭 가마니골이라고 하는 이 마을엔 '보쌈'이 성행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여자를 보쌈 하는데 보자기가 아니고 곡식을 담는 가마니로 했다는 것이 재미있다.

보쌈은 여자만 해당한 것이 아니라 홀아비와 총각들도 대상이 되었다. 고전소설 '정수경전'의 주인공은 바로 이런 보쌈에 걸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 출세했다는 남자의 얘기를 다룬 것이다.

정수경을 납치하여 보쌈 첫날밤을 치른 처녀는 재상집 딸 김소저였다. 그러나 처녀는 첫날밤을 치르고 죽을 운명에 있던 정수경을 사지에서 구해 백년해로 한다는 줄거리다.

청주시 북일면 형동리에 내려오는 민담도 재미 있다. 옛날 80세 늙은 부친이 아내를 잃고 홀로지내면서 매일 아들에게 화를 버럭버럭 내는 것이었다. 아들은 부친이 화를 내는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수소문하여 과부댁을 보쌈 하여 계모로 맞아들였다. 그날부터 부친은 싱글벙글하며 아들을 대했다고 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는 불효했지만 아버지에게는 효성을 한 셈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신 중년이라고 불리는 60~70 세대들의 연애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홀로 외롭게 '환과'를 탄식하지 않고 자식들의 도움 없어도 적극적으로 짝을 찾는다는 것이다. 탄력을 잃은 얼굴, 구부정한 신체에도 불구, 한껏 멋을 부려 상대의 마음을 '보쌈'하려는 노력들이 애틋하기도 하다.

인생의 황혼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외롭게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도심에는 이런 노인들을 겨냥한 각종 서비스업이나 영업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다.

소득이 적은 저소득층 노인들은 마음의 여유마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명하다가 돌보는 이들마저 없이 고독사로 목숨을 잃는 노인들이 많다. 이번에 새로 선출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염두에 두어야할 과제가 바로 늘어나는 노인세대들의 문제다. 절망적인 '환과노인'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묘책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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