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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꽃밭 모퉁이 돌아가면 옹기화분에 심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오래 전 뒷산에 갔다가 한 모숨 떠 온 것으로 이제는 제법 팔뚝만치 굵다. 키는 작아도 비늘같은 껍질과 서리 얽힌 줄기가 그 간의 세월을 말해 주는 것처럼 엄숙하다. 올해는 또 봄비가 잦아 더욱 푸르러진 듯하다. 5월이 되고부터는 팍신팍신 송홧가루까지 머금었다, 신록의 계절을 맞아 특별한 감동이었는데.

쇠처럼 억센 등걸에서 우물보다 깊은 연륜을 본다. 먼 세월 그루터기에 한 점 씨앗으로 자란 나무가 비바람에도 산다라 남게 된 것은 오래 단련된 의지였거늘. 철사를 끊어 줄기를 감을 때마다 스스로 모질다 싶을 때가 많았다. 얼마 후에는 철사의 굵기대로 움푹 파이는데, 비바람에 찢긴 것도 아니고 멀쩡한 가지에 생채기를 낸 격이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한 두번 아니고 가지가 나올 때마다 서로가 못할 짓이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재가 되기 어렵고 기왕 내친 김이라고 나무를 위해서도 참기로 한 것이다.

나무로서도 하늘 향해 마음껏 가지를 내고 싶었을 테지. 좀 더 자라면 흰 구름 낱낱 떠 앉히고 산새들 예쁜 노래도 청해 들을 수 있었겠지만 분재로 크다 보면 하늘이니 구름과 새도 훨씬 더 아기자기한 기분일 수 있다. 앙바틈 나무가 되어 온 하늘과 땅을 자그마한 공간에 눌러앉히는 것도 행복일 수 있는데 가꾸는 건 수월치 않았다. 뿌리가 보일 정도로 얇게 심다 보니 물을 주어도 건성 흘러내리고 배배 틀어질 때는 자못 심란했으나 그게 분재로 크는 최상의 조건이다.

물을 줄 때도 분무기로 일일이 뿌려 주었다. 웃자라는 것을 막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물이 배지 않고 흘러내리고 만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구불구불 어우러지더니 비로소 분재 나무 같다. 자세히 보면 하늘 향해 뻗어가는 대신 모질게 굵어버린 가지들. 움푹 파인 자국을 볼 때의 안쓰럽던 마음은 간 곳 없이 저만치 자란 게 대견하다. 깊은 밤이면 손맡에까지 내려앉는 별이 있고 달빛은 뒤뜰 어름에서부터 서리 빛날 것이기에 야트막 자란 세월도 힘들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꽃보다 노래보다 예스러운 이미지가 미쁘게 생긴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듯 아련했건만.

눈감으면 나직하게 흘러 온 세월 강 물소리가 들렸다. 비가 와도 젖지 않고 함초롬 묻어나는 이슬방울로 더더욱 찬란했던 그 노래. 하늘 향해 마음껏 자라지는 못했어도 끝내는 오랜 집념으로 새겨 둔 등걸 하나 이미지가 숭고하다. 오랜 날 제 키를 줄이면서 꿈을 넓히고 하늘을 일궈 온 나무 등걸은 하고 많은 꿈 다독이며 살아 온 누군가처럼 경건했다. 왜 그런지 아프고 괴로웠던 과정은 다 잊은 채 오래 전 일을 회상할 것 같던 그 느낌.

어느 때는 기슭의 나무에서 팔랑팔랑 떨어진 꽃 이파리도 떠가고 구름도 나란히 따라온다. 싱그러운 바람과 새소리도 스쳐가지만 지금의 분재를 만든 것은 먹장구름 낀 하늘과 한여름 천둥번개였다는 생각. 나도 한 그루 분재나무처럼 살고 싶었던 걸까. 뿌리가 드러나도록 심는 까닭에 유달리 가물을 타곤 했으나 그렇게 해마다 연륜을 보태고 곡절이 쌓이면서 멋들어진 한 그루 나무로 자라게 된다. 나무는 또 스스로의 뜻이 아니고 내가 키운 거지만 저만치 자란 것에 대한 감회 또한 남다를 테니까.

꽃은 빈약하고 그늘 또한 작아도 앙바틈 가지와 뿌리는 온 땅과 하늘을 뒤덮고도 남을 만치 억센 등걸로 자랄 것이다. 살면서 아픔과 어려움도 친친 감아 둔 철사같이 힘들게 할지언정 괴롭다고 하면 분재로 키운답시고 철사를 동여맨 일 같은 게 무색해질 테니 모순이 따로 없다. 한 그루 분재나무처럼 자신을 둥글리고 단련할 수 있다면 세상 못 이룰 건 없겠지. 더러는 하늘 높이 자란 나무보다 앙바틈 가지에서 꽃보다 고운 품격을 내 삶에 접목해 보곤 한다. 곡절을 참고 연륜을 쌓는 과정이야말로 앙바틈한 나무의 소망이었다고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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